예수님은 가정을 찾다가 못 찾고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하면서 다시 찾아와야 할 가정의 이상을 남겨 놓고 십자가에 돌아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다시 회생할 재림의 날을 찾아 나온 것이 2천년 기독교의 수난길입니다. 예수님은 와서 예비된 신부를 찾아야 됩니다. 그래야 가정을 중심삼고 이루려는 세 가지의 사랑 목적을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 자리가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어린양잔치입니다. 인간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인류는 거짓 부모, 거짓 조상을 모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참부모가 안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이기 때문에 첫 번에 구상했던 것을 끝에, 창세기에서 실패한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갖다 맞추려는 것입니다.
제2절 주요 기념일
참부모님 성혼일
1960년에 행했던 성혼식의 배후에는 아담 이후 예수님 때까지 4천년, 예수님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천년의 역사과정에서 걸렸던 모든 것을 탕감조건을 세워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행사는 세계적이고 천주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에 대한 박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1953년부터 1960년까지의 기간은 박해의 시기였습니다. 그 기간에 적어도 360만 이상의 사람과 3개 이상의 교파,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탕감조건을 승리권 내에 세운 것이 성혼식이었습니다. 그날이 통일교회의 운명을 결정한 최초의 날입니다.
통일교회 무리들을 모아서 1960년에 전국에 못해도 120개 이상의 교회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것은 세계 120개 국가를 대표합니다. 그 기반을 닦은 후에 거기에서 아무리 국가적 시험을 당하더라도 쓰러지지 않고 망하지 않을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 밑에서 1960년에 새로운 성혼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통일종족을 편성한 그 기반을 중심삼고 민족적 사명을 완수해서 이런 축복의 날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기점입니다.
성혼식은 일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사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사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대해 이러한 심정적 기원을 총합한 자리에서 누구보다 사랑하는 하나의 가정적 기원을 선포한다고 할 때, 그 가정적 기원을 중심삼고 천륜은, 천지의 운세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1960년에 가정이라는 기반을 가졌기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가정 기반을 못 가졌으면 망하게 됩니다. 1960년의 이 성혼식이 얼마나 역사적인 사건이었던가! 지금까지 6천년 섭리역사시대에 아담 하나 찾기 위해서 수고하던 그 기반 위에 아담이 지상에 기준을 닦아 해와를 완성한 해와로서 맞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영계와 육계로 갈라졌던 것이 비로소 지상세계에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늘 대신이요 여자는 땅 대신입니다. 갈라졌던 영계와 육계가 연결됩니다. 아담과 해와가 원수였던 그 담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와 하나님이 만날 수 없던 이 담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사탄이 빠져나간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3대가 혼자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는 어릴 때에도 누구의 후원도 받지 않고 혼자 자란 외동딸이었습니다. 그런 외동딸을 만든 것은 사탄의 핏줄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도 외동딸이고, 그 어머니도 외동딸입니다. 3대가 끌려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3대 수난을 받았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신앙에 취해서 돌아다녔으니 기저귀인들 잘 채워 주고 밥인들 잘 먹여 주었겠습니까? 인간세계의 정을 모르고 천정의 도리를 이어 주기 위해서 일편단심, 신골(身骨)이 녹아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하나님 앞에 절대복종하고 절대순종하는 길을 간 것입니다.
뜻이 없었으면 선생님이 어머니와 만날 수가 없습니다. 뜻이 그렇기 때문에 만났습니다. 어머니가 될 사람은 20대가 넘으면 안 됩니다. 원래는 18세가 넘으면 안 됩니다. 18세를 하루라도 거치면 안 됩니다. 해와가 16세에 타락했기 때문에 3년을 거쳐 19세까지 연결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자신은 사랑을 중심삼고 양같이 순종해야 됩니다. 모든 면에 절대 순종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남편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우리 아버지만도 못하다. 우리 오빠만도 못하다.’라고 비교의 기준을 두면 안 됩니다. 왜 그러냐? 에덴동산에서 해와는 남자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남자에 대해서 딴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택하는 데 있어서는 모든 조건이 맞아야 했습니다. 앞뒤로 맞아야 되고, 좌우로 맞아야 되고, 상하로 맞아야 됩니다. 제1의 조건이 뭐냐 하면, 어떠한 핏줄을 타고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참소받을 수 있는 핏줄의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느냐, 아니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핏줄의 내연을 가지고 태어났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머니를 볼 때 아주 단정합니다. 어머니가 얌전하게 가만히 있을 땐 누구 못지않게 존경할 수 있는 내적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도 동양의 여성미가 저렇다고 하면 나도 동양 여자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할 수 있게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서양 남자들 중에는 동양 여자들은 어머니 같을 것이기 때문에 결혼 대상을 동양 여자로 결정했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동양 여성상을 세계 식구들에게 가르쳐 주는 데에 위대한 공적을 낸 어머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로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해방 직후 7년 7년 해서 만 14년을 지내고서 성혼식을 한 것입니다. 소생 구약시대, 장성 신약시대의 기준을 넘어서,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결혼하게 돼 있었으니 소생·장성의 각 7년 기간을 넘어가서 완성기 소생급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국가 기준을 넘어야 됩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일
통일교회는 역사적인 인연을 따라 기독교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은 통일교회 하나님만으로 있기를 원하지 않고, 기도교 하나님만으로도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요, 기성교회도 기성교회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둘은 공동목적을 중심하고 인연과 관계를 지어 보다 큰 세계적인 일념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신령으로 통일하는데 부자관계의 신령으로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영적 세계와 인간세계의 조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을 신령이라고 합니다. 신령은 안 보이던 봉사가 눈을 뜨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막혔던 귀가 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성경에도 예배 볼 때는 신령과 진리로 보라고 했는데, 그것은 무슨 진리냐? 사랑의 진리입니다. 그 사랑의 진리의 최고가 뭐냐? 아버지와 아들딸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돈이나 권력,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통일은 둘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통(統)’ 자는 ‘거느릴 통’ 자입니다. 주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연합이 아닙니다. 통일입니다. 통일은 어디까지나 주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연합교회가 아닙니다. 통일교회입니다. 주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체의 근원이 어디냐? 영원히 남아야 할 절대적인 신의 심정의 기원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교파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고 하는데, 그것을 만들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교파를 초월한 초교파적인 면에서 운동을 하려는데,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통일교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수난과 시련 가운데 우리 교회가 창립되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하늘의 전체적인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슬픈 일이지만, 우리가 역사적 전통을 회상하는 데 있어서는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창립된 것이 더 인상적입니다. 통일교회는 모두가 환영하는 자리에서 창립된 것이 아니라 외로운 입장에서 몇몇 사람이 모여서 눈물과 더불어 이날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처럼 서러운 사정이 있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역사상에 추억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좋은 것을 바라고 있지만 좋은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일상적으로 지나갈 수 있지만, 그 좋은 것을 찾기 위하여 어려움을 극복한 역사는 언제나 좋은 것을 맞이할 수 있는 새날의 약속을 자극시키는 힘의 모체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란 어떤 교단이냐? 반대하던 기독교 대신 그 앞에 새로운 아벨적인 종교 형태로 등장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다시 말하면 반대하는 기독교로 인해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 기독교를 대신해서 찾아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기독교가 가인이라면 통일교회는 아벨의 입장입니다. 우리가 아벨 교단이라면 무엇부터 복귀해서 아벨을 만들어야 되겠느냐? 기독교부터 복귀해야 됩니다. 이것은 가인을 복귀하는 원칙과 마찬가지입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설하게 된 동기는 인의(人意), 즉 사람에 의한 뜻보다도 신의(神意), 즉 신에 의한 뜻이 있어서 출발하였습니다. 이 사회나 역사는 인의만으로 구성되어 나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신의를 중심삼은 크나큰 뜻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지향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뜻만으로 협회가 창설되어서는 역사의 흐름이나 앞으로 오는 새로운 세계 앞에 공헌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신의에 입각한 새로운 종교를 창설했던 것입니다. 인의와 신의가 합할 수 있는 하나의 조직체가 종교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종교는 반드시 신의를 중심삼고 인류 전체가 바라는 인의적인 모든 것을 결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하나님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면 이 통일교회가 거쳐서 가야 할 길은 여러 길이 아닙니다. 출발도 하나일 것이고, 가야 할 길의 방향도 하나일 것이며, 귀착되어야 할 목적지도 반드시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으니 가는 길도 나 스스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동기가 돼 있기 때문에, 그 동기를 따라서 우리가 집합되었기 때문에 그 동기와 하나되어 방향을 거쳐 나가는 도상에 서 있습니다. 그 방향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스스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는 종교 가운데에 제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두고 그 누구도 모르는 세계까지 발굴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역사는 거기서부터 출발했고, 과정에서는 그곳을 그리며 가고, 종착점인 그곳을 표현화해서 생활무대에서 이어받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과거에도 있어야 되고, 현재에도 있어야 되고, 미래에도 있어야 됩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 이름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명칭을 바꾸어서 사용합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중심적으로 선두에 서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선두가 되었지만, 이제는 가정연합이 선두가 되고 통일교회는 서서히 없어질 때가 옵니다. 통일교회의 ‘세계기독교통일’이라는 말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책임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차원을 넘어서 기독교의 축복이 만민 앞에 전부 이양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든다는 것입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인데, 신령도 결국 참부모님을 중심삼고 지상에 가정적 메시아 기준이 정착될 때는 끝나는 것입니다. 신령의 실체를 이 땅 위에 모시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 참부모의 계승자들이기 때문에, 그 참부모는 영적 완성과 지상 완성을 대표한 가정의 출발로부터 국가 출발, 세계 출발, 천주 출발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모형적인 기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시대는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단체 모임은 한 가정을 중심삼고 결속할 수 있는 대표적인 핵입니다. 여성연합은 어머니 입장입니다. 그다음에 청년연합은 가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학생연합은 아벨 입장입니다. 해와와 더불어 이 셋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제 단체 활동을 하는 데는 전부 분별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되어서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종적인 시대니까, 사탄이 위에서 반대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종적이면서 횡적인 관계를 안 맺었습니다. 여러 단체를 선생님이 많이 만들었지만 이것은 세계적 기준까지 종적 탕감을 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종적 탕감을 종결시키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횡적으로 전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단체는 전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결속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착지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공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사랑의 혈통을 이어받았으면, 참생명·참혈통과 참된 양심을 가진 참된 내가 되었을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거짓된 내가 되었기 때문에 몸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본연적 아담 가정 세계 형 판도에 가입해야 될 시대에 들어왔으니, 전 세계인들이 가정을 중심삼고 완성해야 됩니다. 완성해야 될 것이 뭐냐? 타락한 가정을 탕감복귀한 가정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각자가 노력해서 갖추어야 됩니다. 완성은 아담과 해와가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가정연합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조직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아담 혈통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산을 넘어 비탈길을 넘는 것처럼 복귀과정을 올라가다가 실수하면 언제든지 이것을 되풀이합니다. 몇 백만년, 몇 천만년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입감·출감일과 애승일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머리를 깎일 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내가 원해서 머리를 깎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손에 끌려와 강제로 머리를 깎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눈빛이 얼마나 빛났는지 모릅니다.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내가 원하던 행복을 버리면서, 더욱이 원수 앞에서 머리를 깎이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복귀의 사연을 엮어 가는 노정에서는 그 모든 역경이 한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지낼 때는 한스러웠지만, 지내고 보니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고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매를 맞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을 위해서요, 내가 흘리는 눈물은 이 민족의 아픔을 대신한 탕감의 눈물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행로에 있어서 하나님을 붙잡고 몸부림치면서,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때까지 이 탕감노정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나 홀로 이 길을 넘어왔던 것입니다.
고문을 받고 쓰러지는 순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순간이요, 숨이 끊어질락 말락 하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통일교회의 이 진리가 나오기까지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깊은 배후가 있었고, 골짜기가 있었고, 굴을 통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생각도 못할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라고 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고생이 나쁘고, 감옥살이했다는 것을 조금도 슬프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복을 받을 수 있는 좋은, 하늘이 내게 재산을 남겨 주기 위한 방법이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옷을 벗으면 이 길을 나선 뒤에 생긴 흉터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볼 때, 이 흉터는 인류와 하늘이 선생님에게 준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너 그때에 결의하던 것을, 죽을 때까지 생명을 걸고 가겠다고 하던 그 맹세를 잊어버렸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지지 않았는데 내가 없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마다, 아침 점심 저녁 그것을 바라보면서 맹세한다는 것입니다. 승리하라고 ‘이 흠집을 가진 너는 승리해야 돼!’라고 격려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흥남감옥에서 일할 때, 겨울 그 추운 때에 맨손으로 암모니아 비료 가마니를 날랐습니다. 살이 갈라져 뼈가 보일 정도가 되어 피가 나는데도 매일같이 암모니아 비료를 날랐습니다. 보통 면 제복은 일주일 이내에 다 뭉개지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반년만 일하게 되면 몸 세포가 죽어서 짜면 물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문자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힘들면 이 이상 될 때는 하늘을 저버릴 것이고, 하늘의 배신자가 될 것이 아니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흥남감옥에서 비료를 가마니에 넣는 작업에 동원되어 일할 때, 밥이 배급되면 배가 고프기 때문에 밥그릇을 받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밥을 입속으로 털어 넣습니다. 자기 밥을 우물거리면서 두 눈은 다른 사람들의 밥그릇에 고정됩니다. 배식이 끝나기도 전에 다 먹어 버립니다. 자기가 먹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밥그릇을 받는 것을 보고는 자기 밥그릇이 비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옆 사람과 싸우기도 합니다. ‘네가 내 밥을 먹었지?’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밥을 자기 입속에 털어 넣다가 목구멍이 막혀 죽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 죄수가 그의 밥을 다 먹기 전에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죽은 사람의 입에서까지 밥알을 꺼내 먹기 위해 싸웠습니다.
선생님은 정신력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정신적으로 특별한 결심을 했습니다. 먹는 음식의 절반으로도 살 수 있다고 마음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님 음식의 절반을 나눠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3주 동안 계속했습니다. 절반의 음식만을 먹고도 작업량을 완수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주가 지나고부터 선생님 몫의 음식을 모두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선생님의 식사는 절반이고 다른 절반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덤이라고 생각하며 먹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감옥살이 등 별의별 경험을 다 했습니다. 지금 지내고 보니 하나님이 고마웠습니다. 결국 선생님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거친 그 과정들은 절대로 선생님한테 마이너스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얻은 것이 많았습니다. 배가 고플 때의 밥 한 알이 얼마나 귀한지, 지금도 정신이 번쩍 듭니다. 밥 한 알이 그렇게까지 온 신경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에 대한 무한한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밥을 그리워하면서도 그것을 잊으려고 애쓰면서 하나님을 더 그리워하고자 눈물을 지었습니다. 또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남이 모르는 가운데 눈물지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흥남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에게 좋은 옷이 있으면, 식구들에게서 좋은 바지저고리가 들어오게 되면 제일 불쌍한 사람에게 갖다 입혀 주었습니다. 거기에서 가마니에 비료를 담아서 새끼로 묶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손이 전부 갈라져 피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 손으로 선생님은 천막의 천을 풀어서 옷을 만들었습니다. 바지를 만들어서 죄수들 중에 누구도 면회 오지 않아 입을 옷이 없는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품이 들겠습니까? 그러면 그들이 좋아합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사다 주는 것보다 더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옷이 다 찢어져서 바람이 불 때 엉덩이가 보이는 옷을 입고 다녔어도 감옥에 있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 옷을 들고 가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공산당이 감옥에 넣고 별의별 놀음을 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끝끝내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되 절대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내가 약속했으면 내가 약속한 것이 절대적이요, 그가 나에게 명령하면 그것을 절대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쉬운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감옥에서도 효자는 효자 노릇을 해야 됩니다. 충신은 충신 노릇을 감옥에 들어가서도 해야 됩니다.
6.25때 이북에 유엔군이 제일 먼저 상륙한 곳이 흥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쁘게 구해야 할 한 아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은 그 전전날 한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밥을 준다고 꼬여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죽이려고 그러는 줄은 모르고 밥을 준다고 하니까 그것을 얻어먹겠다고 서로 가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벌써 그것을 알았습니다. ‘너희는 다 죽더라도 난 죽지 않는다. 어떠한 참사의 비운이 거쳐 가는 자리에서도, 총살을 당해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난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꼬여서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 전부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선생님이 끌려갈 차례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유엔군이 흥남에 상륙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선생님이 감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유엔군이 북한의 흥남에 상륙함으로써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오게 된 그것이 민주세계가 혜택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엔군이 상륙하여 감옥 문을 열어 선생님을 구출하게 되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민주세계가 구원받고 후원받을 수 있는 인연이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만일 선생님이 감옥에서 사흘만 더 지냈다면 영계에 갔을 것입니다. 공산당은 죄수들의 1차, 2차, 3차 숙청을 정해 놓았는데 선생님은 3차 숙청에 걸려 있었습니다. 형기가 7년 이상이면 1차, 5년 이상이면 2차 숙청 대상이었는데 선생님은 5년형을 받고 감옥에 있었습니다. 1차 숙청을 하던 날이 바로 선생님의 출옥 사흘 전입니다. 3차 숙청을 당하기 전에 결국은 선생님이 해방된 셈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복귀섭리를 해 간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1954년 5월 1일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설함으로써 반대가 벌어졌습니다.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쟁 마당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한국 정부, 한국에 있는 전부는 선생님 하나를 두고 싸워 나왔습니다. 나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전부가 반대했습니다. 세계사적인 주인공을 끝까지 반대함으로써 그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전 세계의 운세를 몰아 선생님 한 사람을 전 세계 사탄세계가 때려잡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금후에 사탄세계가 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불가피하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1955년 7월 4일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공산당이니 뭐니 하면서 세상의 나쁜 것은 다 선생님이 걸머진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웠습니다. 나쁜 이름이면 다 갖다 붙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별의별 조사를 했는데도 아무것도 없으니 무죄 석방을 했습니다.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사건이 일어난 그 모든 문제가 교육기관을 중심삼고 기독교의 최고 기준을 연결시키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반대를 하지만 하늘 편을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1세는 그만두고 2세를 포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 1세를 그만두게 되었느냐? 1세는 이미 더럽혀졌다는 것입니다. 남한에서 이 뜻을 세우려 할 때 반대했기에, 북한에 가서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는 사탄이 제시하는 조건을 세운 기반이 되었으므로 1세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2세를 중심삼은 구원섭리를 추진시켜 간 것입니다.
이화여대 총장이 종교사회사업학과 교수를 통일교회 내용에 대해 알아보라고 보냈는데, 이분이 일주일 만에 원리 말씀을 듣고 통일교회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러자 여러 교수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기숙사 학생들이 이 원리 말씀을 듣고 몽땅 찾아왔습니다. 이화여대는 당시 미국 선교부로부터 원조를 받고 있는 입장이었는데, 이름도 없는 통일교회에 흡수될까 봐 위험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에 들어온 학생들을 상대로 긴급조치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퇴학사건입니다. 이자택일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학교를 택할 것이냐, 통일교회 문 선생을 택할 것이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퇴학사건이 벌어짐으로써 선생님이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화여대와 연세대학교 기숙사 학생들에게 통일교회 바람이 불어 몇 주 만에 뒤넘기치니까 이것을 두어뒀다가는 몇 년 이내에 기독교가 망한다고 해서 어떻게 하든지 때려잡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별의별 요사스러운 소문을 내 선생님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조사해 보아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중에는 병역기피라는 혐의를 씌운 것입니다. 선생님이 북한에서 감옥살이하다가 나왔기 때문에 군대에 갈 나이가 지났습니다. 그랬는데도 병역기피라는 혐의를 씌워 조사했습니다. 그런 혐의를 씌워 조사해도 사실이 아니니까 할 수 없이 무죄 석방을 한 것입니다.
당시 자유당 정권이 선생님을 얼마나 반대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이화여대를 끌고 가고, 연세대를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선교부가 끌고 가야 할 텐데, 레버런 문의 말을 들으면 이화여대든 연세대든 할 것 없이 몽땅 끌려간다.’라고 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모든 교파가 있으면 교파가 끌려가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단났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퇴학시키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을 중심삼고 섭리의 기점이 출발함으로써 한국에 있어서 기독교는 한국 내의 기독교로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섭리와 전체 세계를 대표한 기독교의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섰던 교회와 나라가 반대하면 전 세계가 걸려 들어갑니다. 선생님 한 사람을 어떻게 꺾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한 문제의 복잡한 와중을 통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던 것과 마찬가지로 최후에 사탄 편에 끌려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7·4사건 같은 것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나라에서 문제시하던 것에 걸려 넘어가면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중심삼은 7·4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무죄 석방을 받았기 때문에 영육을 중심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와 나라가 반대함으로써 기반을 잃어버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통일교회나 선생님 자체로 보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물론 분립적인 입장에서 잃어버린 것을 전부 찾은 자리가 아닙니다. 이제 다시 찾아야 할 자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영적 세계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이 영적 기반을 대신할 수 있는 기반을 선생님이 만들어야 됩니다. 기독교와 같은 기반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편성한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선생님이 댄버리 교도소로 가면서 ‘댄버리 저쪽 편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벽이 있는데 그 사랑의 벽이 얼마나 높은 줄 아느냐? 얼마나 큰 줄 아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때 모였던 통일교회 교인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선생님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희망의 행각으로, ‘내일 회생되어 찾아오는 태양빛은 더욱 빛날 것이다.’라고 하면서 들어갔습니다. 생활환경이 180도 변하는 것이 연구 대상입니다. 전부 사랑으로 수놓을 수 있는 연구 재료로 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댄버리에서 나옴으로써 지금은 서구 기독교 문명과 동양문명을 대표한 통일교회 문명이 자리바꿈을 하여 차자가 장자가 되고 장자가 차자가 되어 돌아가는, 조수가 바뀌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40년 고개를 넘어서면서 바꿔치지 않고는 하늘 섭리가 깨지기 때문에 선생님은 감옥에 가서라도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러한 사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서도 95퍼센트를 남을 위해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청소하고 더러운 곳을 깨끗이 치우고는 일과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댄버리 감옥에 있을 때 식당에 가서도 쉬지 않고 무엇이든지 해야 된다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남들은 일이 없으면 잠을 자고 별의별 짓을 하지만 선생님은 서서 기다립니다. 습관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선생님이 먼저 가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식당에서 유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은 하늘 앞에 ‘나를 도와주소.’라는 기도는 한 번도 안 했습니다. 댄버리에서 선생님은 첫째는 말없이 일하는 사람, 둘째는 책 읽는 사람, 셋째는 명상하는 사람, 넷째는 수영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남았습니다. 풀장이 가까우니까 시간이 있으면 수영을 했습니다. 그래서 수용자들이 전부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는 소식이 빠릅니다. 선생님이 지나간 그 발자취는 어느 누가 보더라도 회상의 인연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댄버리의 벽을 통과해서 살아남아 다시 복귀해서 완성하지 않으면 하늘의 뜻에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어중간한 사람에게 완성의 길은 영원히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가 통일되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진리가 세계의 진리라고 해도 큰 상처만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길을 선택하더라도 직행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선생님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생애에 몇 번이나 감옥에 끌려갔어도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당당합니다. 만민의 괴로움을 짊어지고서도 옥중 생활을 천국 생활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댄버리에서 한 일이 뭐냐? 부모가 길을 다 막아 놓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옥에서부터 영계까지 직통하는 고속도로를 닦는 식을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그 길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됐습니다. 길이 열렸기 때문에 자기 조상들이 지옥에 내려와서 탕감해 주게 됩니다. 교육을 해서 한 단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댄버리에서 선생님이 영계와 육계가 거짓 부모로 인해 닫혀졌던 담을 헐고 참부모를 만날 수 있는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고속도로를 닦아 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서 자기 조상들이 와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도리로써 한 단계씩 끌어올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의 통일운동도 이 사랑으로 벌어지고, 지옥해방 운동도 이 사랑의 도리로써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망권까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랑에만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댄버리에서 13개월 동안에 한 것은 미국에서 13년 동안 말씀한 것을 전부 재감정했습니다. 앞으로 학자들이 이것을 파고 들어오면 질문을 하게 될 텐데, 거기에 대한 답을 못 얻게 되어 선생님한테 물으러 올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해설을 확실히 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책임자는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됩니다. 몇 번씩 탐독해 거기에 대한 방패를 결산할 수 있도록 나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좋은 한 시기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문 선생은 명상하는 분이다. 쉴 새 없이 밤낮 책을 읽고 공부하는 분이다.’, 그다음에 ‘말을 하되 절대 불평하지 않는 분이다. 불평할 환경에서 희망의 말을 하는 분이다.’라고 아는 것입니다.
애승일은 사망권을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고 책임분담을 완성한 기준의 사랑의 승리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망권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탄이 와서 근접을 못합니다. 근접하려면 즉각적으로 영계가 동원하게 됩니다. 부모님의 사랑권을 받은 것과 사탄과 천사장 사랑권을 받은 것과는 다릅니다. 부모님의 사랑권 인연을 영계에까지 연결시켰습니다.
애승일이란 선생님 시대에 있어서 사탄이 가정권을 중심삼고 침범해 들어오는 그 사망권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막아내는 것입니다. 아들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지만 죽기 전 최후의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처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흥진 군이 가기 전에 통일식을 해준 것입니다. 아버지와 너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너는 하나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너를 사탄이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물대에 내세움으로써 사탄이 통일가에 침범하려 하던 모든 것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의 승리 판도를, 하나님이 예수님을 중심삼고 영적 세계에서 제물 바치는 일을 이루었던 것을 지상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던 아들을 제물 바치는 일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지상세계에서 이룬 것이 됩니다. 영적 세계의 판도 기반 위에 육적 실체권을 중심삼은 부자관계의 천국이념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영계도 사랑하고 지상도 사랑하니 우리 부모도 사랑하라는 표어를 세워야 됩니다. 사랑하라는 표어를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흥진 군이 죽었지만, 지상세계와 영계에 있어서 죽지 않고 사랑의 부활권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는 죽음을 통해서 갔지만 너의 죽음을 통해서 사랑을 부활시킨다.’라는 것입니다. 영계를 붙들고 지상을 붙들고 사랑의 부활권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이럼으로써 사망권과 작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화식 때에도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흥진 군이 지상에서부터 영계로 들어가는 동안 선생님은 영계와 육계를 중심삼고 특별한 식을 했습니다. 그것이 애승일인데, 탕감조건을 넘어 애승일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사체를 옆에 놓고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싸움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죽은 아들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됩니다. 사망권을 이길 사랑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당신과 나는 이 시간 하늘이 볼 때에 자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하고, 영계에 있는 모든 선조들과 천사세계와 천천만의 성도, 성현현철들이 자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세계 인류가 과연 사망권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랑의 권한을 갖고 있는 분임에 틀림없다고 머리 숙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선생님에게 ‘당신은 과연 하나님의 사랑의 중심자다.’라고 증거를 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아들을 보내면서도 사망과 바꾸고 전진하면서 사랑의 깃발을 들고 새 세계를 위해 출동한다는 기원의 날이 애승일입니다. 그럼으로써 민족적이요 세계적인 새로운 사랑의 방향을 세워 나갈 수 있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애승일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1984년 1월 3일 오전 4시를 중심삼고 애승일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왕권즉위식과 후천시대의 기념일
기독교는 로마권을 넘어설 수 있는 세계 판도권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이 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기독교가 영계를 대표한 기준에서 2차대전 때 연합국과 추축국이 싸워서 연합국이 승리함으로써 기독교 문화권이 세계를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세계를 통일함으로써 영육이 합쳐질 수 있는 시대가 되어 연합국과 추축국이 하늘 편에 귀속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기반을 중심삼고 천주교와 신교인 개신교가 하나되어 기독교 문화권을 대표하여 오신 재림주를 맞았더라면 1945년부터 3년 반 내지 혹은 7년 후인 1952년에 통일천하가 이루어져서 그때에 하나님왕권즉위식이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방망이를 들고 끝까지 반대하고 있습니다. 유태교가 기독교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망할 수밖에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반대하면서 똑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가정으로부터 사회·국가·세계가 지옥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던 사랑의 이상권은 지구성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축복을 해줘서 혈통을 전환시킬 수 있는 존재가 참부모입니다. 거짓 부모가 나옴으로써 하나님과 사탄이 싸우게 되었는데, 그 싸움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중간에 딱 서서 ‘하나님은 이런 목적으로 싸우지요? 제가 그것을 다 바꿔 드리겠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꿔도 좋다고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을 화해시키고 유태교와 그 주위에 있는 종교도 화해를 붙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와서 가정을 중심삼고 국가와 화합하여 주권만 갖추어지면 다 끝납니다. 2차대전 이후에 제2 이스라엘인 미국이 지상과 천상의 주인으로 오신 분을 만났다면 그분을 중심삼고 지상통일과 천상통일의 기반이 조성되어 일체가 돼서 제3 이스라엘 천국 출발과 동시에 제3 해방권, 지상·천상천국 해방이 연결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56년의 세월이 지나 오늘 하나님왕권즉위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왕권즉위식을 누가 해드립니까? 애초에 누가 그 즉위식을 망쳐 놓았습니까? 사탄과 아담이 망쳐 놓았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참부모가 되지 못함으로써 사탄이 들어왔고, 이 땅 위에 참부모의 혈통적 기준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핏줄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이것을 전부 부정해서 뒤집어 놓아야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못하고 사탄도 못합니다. 사탄이 자기 나라를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것을 자기가 깨뜨려 버리기는 힘든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자기가 만든 것을 개조하면 싫어합니다. 또 그것을 하나님이 뒤집어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뒤집을 수 있다면 에덴동산에서 아담 가정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손댈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그것을 손댈 수 있는 분이 있어야 되는데, 그분이 완성한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본연의 사랑을 가진 가정은 아담 가정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왕권즉위식을 함으로써 나라가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뜻의 선두에 못 서서 한이 맺혔습니다. 하나님이 하고 싶었던 대로 하시지 못한 원한에 사무쳐 계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실 수 있게끔 후원부대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즉위식을 해 드렸으니 행차를 하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때가 달라집니다.
쌍합십승일
쌍합십승일을 몰라 가지고는 선천·후천을 논의할 수 없습니다. 지옥과 천국을 논의할 수 없습니다. 두 쌍쌍이 전부 갈라졌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될 것인데 갈라졌고, 눈도 자기 좋아하는 눈과 자기 나빠하는 눈으로 갈라졌습니다. 자기가 미인하고 결혼할 때는 좋다고 하다가 딴 여자가 잘났다고 생각되면 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전부가 갈라졌습니다. 쌍이 안 돼 있습니다. 그래서 쌍합십승일, 그날이 2004년 5월 5일입니다. 종적인 면의 다섯과 다섯을 합한 열이 이긴 승리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갈라졌던 것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해방·석방이 되는 것입니다.
수(數)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사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쌍쌍제도로 돼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되는 자리에 사랑의 씨를 심는 이상적 창조원칙이 있기 때문에 쌍합십승, 5월 5일이 상하의 십승일입니다. 그다음에는 후천시대와 선천시대입니다. 선천시대는 지나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나간 선천시대를 왼손으로 붙들고 후천시대를 바른손으로 붙들어서 한 바퀴 돌아서는데, 그냥 이것을 붙든 오른쪽과 왼쪽의 다섯과 다섯이 하나됐으니 쌍합십승일입니다. 그래서 360날의 주인 자리에 비로소 선다는 것입니다. 날을 주관하고 수를 주관하기 때문에 이 계수된 모든 수로 풀어낼 수 있는 우주의 공법이나 운동의 질서, 모든 단계도 쌍쌍이므로 상대와 주체 관계가 연결되지 않으면 작용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쌍쌍으로 되어 있는 자리에 사랑의 씨, 사랑의 열매, 사랑의 본체로서 사랑을 결착시키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최후에는 하나님의 조국과 평화의 세계 창건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천시대는 지나가고 후천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선천시대 후천시대를 발표한 날이 쌍합십승일(雙合十勝日)입니다. 선천시대는 지나가는데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들도 왕손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나가는 것을 하나님과 참부모는 왼손에 붙들고, 새로이 찾아오는 후천시대는 바른손으로 붙들고 가는 것입니다. 시계가 거꾸로 도는 것입니다. 오른쪽으로 돌던 것을 돌이켜서 180도 방향을 전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타락함으로써 거꾸로 됐던 것이 하나되어 시간과 날과 해와 세기와 천세만세가 다 하나님이 탕감한 승리의 수인 십승수로 승리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왕권 보좌와 더불어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천시대에서 후천시대가 시작되어 모든 것이 해방시대, 완성시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권 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평화의 왕 대관식
선생님이 평화의 왕 대관식을 했습니다. 대관 즉위식이라고 해야 됩니다. 대관식이 아니라 대관 즉위식입니다. 대관식은 했지만 즉위식이 안 됐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셋을 중심삼고 나왔고,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이삭·야곱과 모세를 거쳐 예수님까지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시대에 나라의 즉위식을 해야 됐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대관식도 못했지만 즉위식도 못했습니다. 선생님 시대에는 대관식과 즉위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예수님의 대관식을 했는데, 예수님의 대관식을 할 때 예수님 혼자서는 못 갑니다. 선생님의 둘째 아들인 흥진 군이 영계의 재림주와 마찬가지 입장에서 사랑의 문을 여는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죽었던 애혼들, 원수까지 축복해 주어 흥진 군이 예수님을 모시고 가서 이스라엘 나라에서 대관식을 해준 것입니다. 즉위식이 아니라 대관식입니다. 대관식을 해주고 그다음에 미국에서 즉위식을 하고 십자가를 내린 것입니다. 영광의 주나 고난의 주와 같은 성경 말씀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가인 아벨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영계와 육계가 갈라진 것을 통일시켰으니 제1 이스라엘권 탕감복귀, 재림주가 이 땅에 와서 예수님이 하지 못한 국가 기준과 세계 기준을 닦아 놓은 터 위에 연결시킨 것입니다. 제1 이스라엘의 왕권, 제2 이스라엘의 왕권이 성립된 것입니다. 하늘을 대신한 예수님과 땅의 참부모를 대신한 흥진 군을 중심삼고 영·육계의 분립된 것을 연결시켜 전체 영계와 육계, 전체 나라와 교회가 하나된 그 자리에 있어서 제2 이스라엘 왕권을 중심삼은 기반 위에서 부모님 앞에 드리는 대관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하늘나라의 상원과 땅 위의 하원, 상·하원을 중심삼고 대관식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로마 원로원에서 선포를 못하고 지상과 천상의 일체권을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 것이 됩니다. 영계와 육계를 중심삼고 비로소 대관식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된 자리에서 오시는 재림주 앞에 대관식과 즉위식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13억에 해당하는 기독교를 가졌습니다. 자기 나라에 있어서 민족 반역자로 죽었다고 하더라도 세계 인류를 품고 정치 풍토, 종교 분야의 최상의 자리에 앉았는데 그런 예수님을 모세보다 못한 사람으로 보는 유태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유태교와 기독교가 반대해서 별의별 일을 다 한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그들이 졌지 선생님이 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끝났기 때문에 비로소 ‘평화의 왕 즉위식’을 미국 의회에서 한 것입니다. 로마 원로원에 예수님이 들어가서 ‘내가 왕이요, 만국의 왕으로 왔다.’라고 선포를 못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백주에 미국의 상원 하원 의원들을 모아 놓고, 3대 종단의 최고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원해서 ‘평화의 왕’으로 모셨다는 것입니다.
본전성지(本殿聖地) 기공식
오늘 기공식을 하는 이곳이 본전성지(本殿聖地)입니다. 그러면 본전이란 뭐냐? 하나님이 바라는 궁전, 하나님이 살 수 있는 황궁, 본연의 집입니다. 그것이 성지입니다. 모든 것을 이긴 것입니다. ‘성(聖)’이라는 말은 ‘귀 이(耳)’ 변에 ‘입 구(口)’에 ‘임금 왕(王)’을 합한 것입니다. 귀와 입이 왕 같은 사람이 성인(聖人)입니다. 잘 들어야 되고, 말을 잘해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밖에 모릅니다. 참부모, 메시아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천정궁
천정궁이란 올바른 것을 만드는 궁입니다. ‘하늘 천(天)’ 자와 ‘바를 정(正)’ 자에 ‘집 궁(宮)’ 자입니다. 천정궁의 뜻이 뭐냐? 하늘에 제일가는 궁입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지었습니다. ‘정(正)’자는 머무를 ‘지(止)’ 위에 뚜껑(一)을 덮어 놓았습니다. 움직이란 것입니다. 천정궁의 의미는 ‘두 사람이 합해서 끊임없이 움직여라! 그러면 네 집이 된다.’라는 뜻입니다. 네 집의 궁(宮)이라는 뜻입니다.
천정궁에는 새로운 국가도 있고, 국화도 있고, 국기도 있고, 국민도 있고, 교육하는 이념도 있어서 어떤 사상, 어떤 종교도 하나로 만들고, 그다음에는 정부도 해방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목표를 정해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천정궁, 언제 어디든지 자연 천정궁이 한국 땅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떠돌이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지상에 발을 내릴 곳이 있습니까? 로마 교황청,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기에 와서 샅샅이 다 뒤졌습니다.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전부 거쳐 봤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인류는 가인적인 혈족이었으니까 형님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맨 꼴찌 메시아가 나와서 마지막에 다 탕감하는 것입니다. 떨어진 두 세계를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탕감은 기독교가 했지만 끌어올리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단일민족의 혈족이 된 몽골반점동족들이 어떤 종교보다도 통일을 해서 깃발을 들고 나서게 될 때는 종파의 관념과 국가의 관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도 하나님의 본연의 자리, 아담 해와도 본연의 자리, 가인 아벨도 본연의 자리, 천사장도 본연의 자리에 세워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정궁입니다. ‘천(天)’ 자가 두(二) 사람(人)인데, 그 두 사람이 바르게(正) 만든 궁전(宮)이라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은 왕 중에서도 왕입니다. 그 왕이 뭐냐 하면, 하나밖에 없는, 한 분밖에 없는 왕입니다. 그런 말은 한국말밖에 없습니다. 만왕의 왕, 그분은 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해방권의 ‘권’ 자는 ‘둘레 권(圈)’ 자가 아니라 ‘권세 권(權)’ 자를 씁니다. 그다음에 대관식인데, ‘대관(戴冠)’이 무엇입니까? ‘대(戴)’ 자를 보면, 그 안에 ‘다를 이(異)’ 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다른 관을 써야 되는 것입니다. 지옥에 들어가는 멸망의 관이 아니고 영광의 관입니다. 해방권 만세입니다. 거기에는 사탄도 동조하고, 하나님도 동조할 뿐입니다. 우주의 법이 치리하는 것을 도울 뿐이지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해방권 태평성대입니다. 태평성대, 억만세 찬양의 시대로 넘어가기 때문에 좋다는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감춰졌던 비밀의 세계, 마음의 행복, 마음의 봄 동산, 마음의 꽃동산 세계로 날아가자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길이 열리는데, 그곳을 여행하자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든지 해결하는 데 있어서 영계만 가지고도 안 되고, 지상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해서 하나님이 해방되는 것도 아닙니다. 참부모와 하나되어 세계의 국가와 종교권을 치리할 수 있는 기반까지 닦아야 됩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지 않으면, 올바른 판단과 올바른 세계적인 운동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까지 보류해 나왔습니다. 만왕의 왕 대관식이 무엇입니까?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의 해방권 대관식이 끝나기 전까지는 흑인들이 따라올 수 있고 백인들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끝난 다음에는 아무나 따라 올 수 없습니다. 그다음엔 중간에 유엔에 가입한 가인 아벨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공산주의하고 민주주의가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을 중간 입장에서 화합시켜서 하나의 새로운 평화세계를 발표하고 나온 것이 만왕의 왕, 한 분 하나님의 왕권을 중심삼은 해방권 대관식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로서 만왕의 왕,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이 참부모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한 분입니다. 지금까지 수천수만의 왕들이 있었지만, 한 분밖에 없는 재림주가 와서 만왕의 왕 자리에 올라가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내적 외적인 실체를 중심삼고 에덴동산에서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실체권이 어떻게 됩니까? 실체를 중심한 참부모의 자리에 서서 그 참부모가 세상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의 왕권을 정착시켜 하나의 왕권이 성립됨으로써 하나님이 비로소 주인의 자리에 서서 통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닦아 온 모든 것을 하나님께 봉헌해 드리고, 참부모가 참부모 못 되었던 모든 실수를 다 걷어치워 하나님이 왕의 자리에 비로소 출동할 수 있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거기서 맨 마지막에 가정적 대표 12지파, 그다음에 국가적 대표 120명, 그다음에 세계적 대표 1200명, 그다음에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는 1만2000명입니다. 그것을 중심삼고 모든 탕감세계를 완전히 수평으로 만들고 하나님만이 등장하는 주인의 권세로서 행차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이상 지상·천상천국이 아니 될 수 없느니라! 아주!
아벨유엔을 중심삼고 새로운 부모유엔이 발족했으니만큼 만왕의 왕, 왕 중의 왕이 돼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과 둘이 합해서 대관식을 올림으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전부가 하늘에 정착할 수 있는 핵이 결정됐으니 결정된 이 핵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조직 편성을 개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선생님의 책임입니다. 어느 누가 여기에서 장(長)의 입장에서 이러고저러고 할 수 없습니다. 만왕의 왕 하나님의 왕권을 대신한 실체를 중심삼고 영육의 일체권을 이룬 기반에서 선생님이 주장하는 도리의 기준을 중심삼고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세계 전체의 초월적인 자리에서 하나의 주권과 하나의 조국, 그리고 하나의 고향 땅을 창건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주인이 돼서 하나님 대신 축복의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는 몇 천년 이후 첫날 되는 날이 지금에 와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루가 아닙니다. 몇 천년이 아니라 수만년입니다. 이 자리를 잡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누구도 모르니까 하나님이 가르쳐 줘서 알 수 있는 그런 때를 열 때까지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2001년이 3000년의 시작입니다. 이제 찾아올 새천년, 3000년 이후에 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선천개벽시대가 아니라 후천개벽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