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경훈독실

제1절 예배와 기도

1

예배시간에 일찍 온 만큼의 시간은 하나님을 위해 바친 시간이기 때문에 천금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에게 바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늦게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을 도둑질하는 것이 됩니다. 예배는 제시간에 나와서 드려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만큼 못한 것을 탕감할 수도 있고, 하나님 앞에 면목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제보다 나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2

‘나는 누구 때문에 교회에 간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 때문에 교회에 간다.’ ‘사랑하는 남편 때문에 교회에 간다.’ ‘사랑하는 아내 때문에 교회에 간다.’라는 사람들은 다 못 넘어갑니다. 누구 때문에 가느냐 하면 하나님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내 사랑으로 찾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안식일과 안시일

3

하나님을 모시는 자리는 예복을 입고 참석해야 됩니다. 겉모양의 예복이 아닙니다. 심정의 예복입니다. 마음에서 말씀과 더불어 찬송과 더불어 감격된 심정이 흘러나온다면 하늘은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눈물 흘리며 쫓겨났지만, 여러분은 눈물을 흘리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는 얼굴로 하나님과 상봉해야 됩니다. 슬픔의 눈물도 흘려 보지 못한 사람이 기쁨의 눈물부터 흘리면 안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눈으로 찾은 하나님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귀로 들은 그 하나님, 내 촉감을 통해 느껴진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내 심정으로 스며들어 오는 그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간섭하지 못합니다. 어떤 위대한 사람이나 권세가도 심정으로 들어오는 하나님을 떼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심정으로 사무쳐 들어오는 그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4

역사는 나 하나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갈급해해야 하며, 은혜를 상속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자기가 잘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하나님과 조상과 교회가 정성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가 수고하는 것도 나 하나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많은 빚을 갚아야 됩니다

5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찾고 인류를 구하는 데 있습니다. 기독교가 안식일을 지켜 온 것은, 이날을 거룩히 지킴으로써 나 자신이 승화돼 구원의 목적을 가중시키는 것에 주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목적은 나 자신의 구원의 길을 촉진시키는 것도 있고, 더 나아가서 전체를 구원하고, 하나님 섭리의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높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6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인간도 좋아해야 됩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제7일을 안식의 날로 정하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6천년 역사가 지난 오늘날까지 안식의 날을 자랑하며 쉬어 보지 못한 하나님입니다. 예수님도 복음의 말씀을 강조했고,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2천년 섭리역사의 곡절 속에 싸움의 역사를 붙들고 왔지만, 승리의 영광의 한 날을 맞아 하나님에게 자랑하고 만민과 더불어 안식한 때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님이 안식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니 우리도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이 오기 전에 전쟁이 있을 것이고, 안식이 오기 전에 고통이 있을 것이며, 안식이 오기 전에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각오하고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는 안식의 맛이라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7

교회에 나올 때는 자기 부모처자를 전부 데리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형님 누나 다 데리고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 사촌이나 사돈의 팔촌까지 전도하기 위해 얼마나 피눈물을 흘려 봤습니까? 그 한 생명을 끌어 주기 위해 밤을 새우며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서 자기 일신을 제물 삼아 얼마나 몸부림쳐 봤습니까?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은 각자 처한 환경에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중심이 되어서 나가야 됩니다.

8

이제 안식일이 없어지고 안착시의의 날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이 쉬려고 하지 않습니다. 재창조를 해왔기 때문에 몇 십배 논 이상을 탕감해야 됩니다. 안착시의, 모심으로 구원받기 때문에 ‘안시일(安侍日)’입니다. 안식일보다도 안시일입니다. 안착시의로 구원받는 것이니까 안시일이라는 말로 약해서 쓰면 통일교회는 어디에 가든지 아는 것입니다. 8일을 지키는 놀라운 재출발의 축복 안착과 시의 세계, 지상·천상 이상세계의 문이 열려 들어갈 수 있는 나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 정성과 기도

9

주일날 준비된 시간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경배드리는 것은 제한된 권내에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초월해서 지구상에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통일식구들이 선생님이 있는 본부를 향하여 정성을 다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몰리고 쫓김 받는 자리에서도 본부를 향하여 기도하며 정성 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 앞에 ‘옳소이다.’라며 찬양하고, 그들의 심정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받들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본부 식구들입니다. 그러니 주일 예배시간을 위하여 사흘 전부터 마음을 졸여 가면서 준비해야 됩니다. 만민의 행복을 빌어 주고, 나를 통해 만민이 소생할 수 있는 부활의 권한과 생명의 인연을 연결시키겠다고 몸부림치며 교회 문을 들어서고, 하나님 앞에 목이 메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해야 됩니다.

10

정성 들이는 사람은 예배시간에 늦으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배시간을 잘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남보다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시간도 안 지키면서 ‘오! 하늘이시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정성은 남이 알게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정성을 들이려면 차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걸어와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할 것이 아니라 먼저 기도를 하고 와서 더 간절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정성은 그렇게 들이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환경과 그들이 추구하는 욕망과는 반비례하는 데에서 정성은 쌓아진다는 것입니다.

11

하늘 앞에 나가는 데 있어서 약속이라는 것은 어디를 가더라도 절대적으로 엄수해야 됩니다.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무슨 은혜를 받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가다가 맙니다. 하늘은 간절히 사모하고 간절히 애쓰는 사람을 대해 주십니다. 아무나 막 찾아가서 대해 주시는 하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시간만은 절대로 엄수해야 됩니다.

12

여러분 가운데는 부모 된 사람도 있고 자식 된 사람도 있지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데 있어서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때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때를 못 맞추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성별된 환경을 요구하고 성별된 마음을 요구하는데, 시간도 지키지 못하고 뒤에서 찬송을 부른다면, 하늘은 그런 찬송 원치 않습니다.

13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기도하게 되면 먼저 하나님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주인을 만나는 시간이니 주인의 복을 먼저 빌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예수님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해야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압니다. 예수님을 위해 기도해야 역사적인 예수님의 심정을 압니다. 그다음에는 지금까지 기독교계에서 뜻을 위해 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됩니다. 타락 이후 아담 해와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걸어간 걸음걸음을 더듬으면서 ‘제가 이들을 해원하는 제물이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린 후 선지자들 앞에 ‘나는 그대들의 한이 땅 위에 남아 있는 것을 알고 그 한을 풀고자 하오니 협조해 주시오.’라면서 눈물 흘릴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후에 사랑하는 자기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다음에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4

선생님은 기도를 할 때에 ‘지금까지 나를 대해 오셨던 아버지시여!’라는 심정으로 합니다. 오늘 한 생명을 아버지 앞에 세우느냐, 사탄 앞에 농락당하게 하느냐 하는 판가리의 기로에서 그 생명을 하늘 앞으로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면서 기도합니다. 설교를 하더라도 세상의 다른 설교자들같이 어떠한 제목을 정하여 준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때에 필요한 아버지의 말씀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이 안 서면 몸부림치고 눈물 흘리면서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의 갈 길을 염려하면서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15

정성을 들일 때는 ‘절대 믿습니다.’라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믿습니다. 뜻을 절대 믿습니다.’라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만 하나님이 협조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기도가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여! 저만 남았나이다. 제가 아니면 이 나라가 없어지고 이 세계가 없어질 것이온데, 아버지여, 당신이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신 이 한 경지에, 이 경계선에 저 혼자 남았나이다. 당신이 성취시킬 뜻 가까이 있는 자가 저밖에 없습니다. 저라는 존재가 이렇게 중요하지만 저는 아직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러한 저에게 명령하셨으니 제가 그럴 수 있는 조건, 그럴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 이 민족을 대신하겠습니다. 이것이 복귀섭리가 아니옵니까?’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16

기도할 때는 맨 처음에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다음에는 영계에 있는 천사들과 영계에 있는 조상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상의 운세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면서 ‘오 주님, 저 천국 보내 주소서!’라고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불쌍한 예수님을 해방해 드리기 위해서는 역사로부터 ‘불쌍하구나.’라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역사의 선조들로부터 ‘너 하나만은 우리의 후손으로서 당당하구나. 전체 역사를 네가 일으켰구나.’라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거기에 더하여 가지고 ‘시대적인 사명과 민족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아들의 사명과 부모의 사명, 효자와 충신의 사명을 다했구나.’라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17

‘당신이 원하는 아들이 못 되거들랑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종의 길이라도 닦겠소. 돌 조각이라도 갖다 놓든가 판자라도 하나 갖다 놓고 아들이 건너올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들겠소.’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기도이지, ‘내 아들딸!’이라고 하는 것은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순차적으로 세계의 성인들을 축복해 주고 자기 기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그런 기도를 해봤자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방법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복 받겠다고 믿는 사람들은 복 받으면 하나님을 그만 믿는다는 것입니다. 복 받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좀 살게 되면 떨어져 나갑니다.

18

여러분이 은혜를 받고 영계를 접해 보면 기도 제목이 자연히 나오게 됩니다. 자기가 기도한 것을 통계로 내 보면 기도의 방법과 내용이 공식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맨 처음에 기도할 때에 세계적인 문제를 놓고 기도하려고 하면 꽝 하고 나가자빠집니다. 처음에는 제일 가까운 사람, 즉 부모와 사랑하는 아들딸과 남편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 시기가 지나서 발전하게 되면 기도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느냐? 자기 가족을 위해 하지 않고 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또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가 어떠한 자리이고, 앞으로 하나님이 소망하는 자리가 어떤 자리일 것인가를 알고, 하나님이 소망하는 그 자리에서 탕감노정을 개척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19

기도할 때는 대상을 두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도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이 되어서 수수작용의 법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자리에서 수수작용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도하고 정성 들여야 됩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는 천년사의 심정을 넘어서 간곡히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천년사의 심정을 중심삼고 안팎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부르는 그 자리는 거룩한 자리요 멋진 자리입니다. 그렇게 되면 실체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부르는 ‘아버지!’라는 한마디의 말에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20

기도의 내용이 어제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매일같이 같은 것을 보지만 그것이 매일 다르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신비스러운 신앙세계에 들어갑니다. 그래야 위대한 신앙세계에 들어가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매일 같은 것을 계속하여도 그것이 좋고 맛있게 되면, 그 계속하는 가운데서 그것을 먹으며 크는 것입니다.

경배식과 가정맹세

21

참부모님을 모시고 떡을 나누어 먹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떡을 먹는 것은 몸과 마음이 두 갈래로 되어 있는 사람들의 몸 마음을 하나되게 하고, 부모가 하나되고, 가정이 하나되고, 일족과 세계가 하나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은 매주일 경배식을 해야 됩니다. 경배식을 하는 날은 성일인데, 성일에는 성식(聖食)이라는 아침을 먹습니다. 그것은 타락함으로써 아담 가정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거룩한 성식을 나누어 주지 못했던 한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풀어 주기 위해서 그러한 경배식과 더불어 축하하는 소원의 마음을 가지고 그런 식을 하고 있습니다.

22

통일교인들은 경배식을 아담 가정에서 종족·민족·국가·세계, 지상천국 세계가 될 때까지 하나님을 모시고 같이 하나되는 식으로서 세계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성찬을 대할 수 있는 시간을 무엇보다 소망의 시간으로 기다려야 됩니다. 이 시간이 하나님을 모시는 시간이요,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맺는 시간인 것을 알고 세계의 축복가정들이 존중시하고 전통으로 지켜 나가야 합니다.

23

경배식은 선생님과 더불어 시작을 같이 했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과 더불어 매일같이 경배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입니다. 축복가정들은 참부모도 이와 같은 식전을 존중시하고 있고, 자기들도 이와 같은 식전을 존중시한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자기 아들딸 앞에 이 전통을 이어 주어야 됩니다. 이 경배식을 통한 심정적 유대라는 것은 가정의 부모와 자식을 중심삼고 평면적으로, 횡적으로 이루어짐과 더불어 종적으로 참부모와 인연을 맺게끔 하고 사위기대, 3대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인연을 맺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자기 후손들 앞에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24

여러분은 자기 가정에서 일요일에 경배식을 해야 됩니다. 이것은 축복받은 사람들의 선언식입니다. 이런 가정은 사탄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맹세’를 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주권을 자랑하고, 하나의 백성을 자랑하고, 하나의 국토를 자랑하고,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자랑하고, 하나의 부모를 중심한 혈족임을 자랑하고, 하나의 심정문화세계를 이룩할 역군임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와 관련이 없다는 선포입니다. 일주일 동안에 별의별 일을 다한 전부를 청산지어 줄 수 있는 하나의 선포식입니다.

25

엄마 아빠가 아이의 손을 잡고 앉아 같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 가정에서 아침에 경배하는 것은 참부모를 만나는 시간,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라는 전통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참부모를 만나러, 하나님을 만나러 가자는 것입니다.

26

경배할 때 자기 혼자 경배하더라도 혼자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가 와서 경배할 때는 자기 아내하고 둘이 같이 서서 경배한다고 생각하고, 여자가 와서 경배할 때는 남편과 같이 경배한다는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섬으로써 남자 여자가 하나된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축복받은 사람은 완전히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7

모든 가정에서 참부모님의 사진을 걸고 사위기대가 함께 경배해야 됩니다. 3대가 경배해야 됩니다. 사위기대는 3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자식들까지 3대가 경배를 해야 됩니다. 참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사위기대권을 이루어서 경배하는 곳은 타락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주관을 하기 때문에 해방권이 벌어짐으로써 천상세계에 간 모든 영인들이 지상에 와서 천사장하고 같이 아담 가정을 보호하듯이 보호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28

주일날 경배식을 하는데 누구한테 경배하는 것입니까? 선생님에게 하는 것이고 자기 가정에 하는 것입니다. 하늘부모와 참부모를 왕으로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왕권을 상속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쁜 일이 어디 있고, 자기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경배하고, 그 아버지 어머니는 서로에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효의 길을 가르쳐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본이 될 수 있는 삶을 사는 운동입니다.

29

여러분이 경배할 때는 지상의 우리만 경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천상세계를 중심삼고,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축복가정들과 천사세계가 완전히 하나되어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간절하게 되면 영계에 가 있는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혹은 친구들을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72대를 넘어서 120대까지도 끌어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국가 기준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지, 국가 기준을 이룬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30

‘가정맹세’는 역사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정맹세가 나옴으로써 지상세계 사탄 가정은 앞으로 갈 데가 없습니다. 가정맹세가 나온 것은 선생님이 2차대전 승리의 기반을 잃어버린 것을 40년을 통해서 4천년 역사를 탕감해 복귀된 기준이 섬으로써 하늘나라가 지상에 설정되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가 ‘우리 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입니다. 전부 그 표제가 나옵니다. 참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의 사랑을 중심삼고 참생명과 참혈통이 연결된 것을 말합니다.

31

지금까지는 ‘나의 맹세’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가정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가정맹세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40년 동안의 세계 탕감노정을 끝내고 전 세계가 선생님을 중심삼고 움직일 수 있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2차대전 직후에 이루어진 통일적 세계인 기독교 문화권을 파탄시킨 것을 선생님을 중심삼고 조건적이지만 세계적으로 이 모든 패권적 기반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32

가정맹세는 역사에 처음 나온 말입니다. 남자 여자가 가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정맹세를 설정해서 하나님과 인류가 이 땅 위에 타락하지 아니한 본연의 기준에서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의 모체를 다시 세우지 않고는 하나님이 기뻐하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살 수 있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러한 맹세문을 세운 것입니다.

33

가정을 중심삼고 가정의 뼈를 만들기 위한 것이 가정맹세입니다. 가정맹세를 만들어서 뭘 하자는 것입니까? 뼈 될 수 있는 하늘부모를 가정의 중심으로 모시자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찾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내 몸 마음이 하나되고, 몸과 마음이 하나된 부부가 하나되면 그 가운데 하나님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 마음이 싸운다면 영원히 하나님이 안 찾아옵니다. 참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목회자의 기본자세

34

목회자는 그 지방의 제사장입니다. 그러니 그 지방을 위해 잠을 못 자면서도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뭇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서 제물을 다루어야 하니 정성 들이는 수고를 해야 됩니다. 제사는 실체와 주인이 하나되어 드려야 응답이 있습니다. 식구가 제물이 아니고 목회자가 제물입니다. 앞으로는 지식적인 지도가 아닌 조직적인 지도를 해야 됩니다. 식구는 살이요, 목회자는 뼈입니다. 뼈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살이 잘 감싸 줘야 합니다.

35

공적인 일을 위해 피곤한 줄 모르고 뛰다가 언제 자는지 모르게 축 늘어지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얼마나 거뜬한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야, 하늘 길은 이렇게 가는 것이 원칙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아이고, 어저께는 3시간밖에 못 잤으니 오늘은 5시간 6시간은 자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잠을 자고 일어나게 되면 허리가 아프고 온 몸이 천근만근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6

선생님은 정성 들이는 사람에게는 꼼짝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회를 지도해 나오면서 두 사람이 있으면 그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잘났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에는 얼굴이 잘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어디로 향하느냐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사적이냐 아니면 공적이냐 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공적인 길을 걸어가게 되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물건을 공적으로 관리하고 사람을 공적으로 대하며 하늘을 공적으로 모시라는 것입니다.

37

아침에 첫발을 내디딜 때에도 공적인 발걸음인지 사적인 발걸음인지 반성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루의 일을 끝내고 자리에 누울 때 공적인 하루를 보냈는지 사적인 하루를 보냈는지 분별해야 됩니다. 혹은 1년을 중심삼고 공적인 생활을 했는지 사적인 생활을 했는지, 일생을 중심삼고 공적이었는지 사적이었는지 반성해야 됩니다. 이러한 것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생사를 판가름할 수 있는 저울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공적인 노정에서 가야 할 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38

일단 책임을 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전투요 투쟁입니다. 네가 꺾이느냐, 내가 꺾이느냐 하는 싸움을 해야 됩니다. 그 싸움에서 여러분은 여러분 일대에 적어도 반대 입장에 있는 세 사람 이상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을 다져야 됩니다. 하나님에게는 수단이나 방법이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또한 일생을 뜻 앞에 받는 입장에 있어서도 안 됩니다. 뜻 앞에서는 오직 주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39

지도자가 될 때에는 진정으로 병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의 심령 상태가 저하될 때에는 밤이나 낮이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밤을 새워 가면서 그 사람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면서 그 사람을 치료해 주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그것이 영적 지도자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살려 주기 위해서 며칠 밤을 새워 봤습니까?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바쁜 걸음을 해봤습니까? 그런 것이 앞으로 영계에 가면 표창의 대상이 될 것이고 인격적인 기준이 될 것입니다.

40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고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한 식구가 떨어져 나가면 그 사람과 성격도 비슷하고 말하는 것도 비슷하고 걸음걸이까지도 비슷한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신기할 정도로 떨어져 나간 그 사람과 너무도 닮은 사람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월등히 나은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정성 들인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만난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하늘을 중심삼고 만난 사람이라면 절대 그 인연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다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라 버리거나 저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과 맺었던 인연만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41

여러분이 말을 하고 가르치는 모든 말 앞에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말 뒤에 서는 것이 아니라 말 앞에 하나님의 심정이 앞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겸손해야 됩니다. 주일에 설교를 하는 데 있어서도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은 자리에서 해야 됩니다. 정신을 거기에 집중해야 됩니다. 설교 단상에 설 때에는 임산부가 분만실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야 됩니다. 그 경지에 가면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설교 내용이 문제가 아니고 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심정이 돼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42

설교하는 시간은 어떤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느냐, 지옥에 들어가게 하느냐 하는 경계선이 됩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대해 궁금했는데 한번 가 보자!’라며 교회에 왔는데, ‘설교가 뭐야?’라고 생각하게 만들면 그 한 사람을 완전히 목을 자르는 것입니다. 공판정에 선 판사가 선고하는 그 시간보다 더 심각한 자리가 설교하는 자리입니다.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이 그런 운명의 자리에 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책임자들이 그 책임을 소홀히 해서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이 없게끔 노력해야 됩니다. 그래서 책임자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를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그 자리는 지극히 무섭고 두려운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