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탕감복귀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제물적인 조건이 필요한데,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생각대로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기 생각대로 한다면 하나님이 받아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건물은 내 생명 대신입니다. 나 대신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조건물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고, 그 조건물을 완전히 사랑해야 됩니다. 그것이 죽음을 당할 때 같이 아픔을 느끼고 속으로 울면서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제물로 드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심정적으로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갖춘 자리에서 드려야 됩니다. 이런 자리에서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물질을 바치게 될 때에는 여러분이 쓰고 남은 찌꺼기를 바치면 벌을 받습니다. 그런 것은 차라리 안 바치는 것이 낫습니다.
제2절 헌금 생활
십일조의 내용을 보면, 거기에는 참 무서운 내용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야 한다는 성경 구절도 있습니다. 열 가운데 하나를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무엇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십일조는 하나만큼만 갔는데 열까지 갔다는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부모님의 생일잔치나 환갑잔치, 혹은 상감마마의 탄신일을 맞아 축하해 드리기 위해서 소도 잡고 돼지도 잡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만들어 바친다고 했을 때 그분들이 그것을 전부 먹습니까? 아닙니다. 받기는 다 받지만 다 먹지 못하고 극히 조금밖에는 먹지 못합니다. 이렇듯 조금만 먹지만 다 먹었다고 하는 조건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 중에서 10분의 1을 하나님에게 바침으로써 전체를 바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전체를 바치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를 정성 들여 바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를 바침으로써 남는 아홉도 거룩한 물건으로 취급받게 됩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바치며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창고가 불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더라도 숫것을 놓고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쓰다 남은 것 가지고 정성 들여서는 안 됩니다. 십일조는 제일 정성을 들인 숫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물입니다. 제물을 드릴 때에는 숫것을 드려야 합니다. 아들을 제물로 드린다면 제일 좋은 아들을 드려야 합니다. 제물은 ‘나’ 대신이기 때문입니다.
정성 들여 십일조를 하게 되면 절대 굶어 죽지 않습니다. 그 후손이 물질에 대한 궁핍함을 당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서는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적당히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물은 내 생명 대신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귀한 것을 바쳐야 됩니다. 사람에게 제일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러니 내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의 제물을 통해서 죄를 씻는 일입니다.
10수는 하늘수입니다.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수는 9수까지입니다. 9수는 지금까지는 나쁜 수로 취급받았습니다. 이것을 사탄이 지금까지 지배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이 지배하는 이 땅 위에서 이 9수를 하늘 앞에 맡겨 연결시킴으로써 하나님이 나를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0수의 위치를 찾아 놓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고 9수를 끌고 들어가면 이 9수권 내의 모든 소유권을 사탄세계에서 분리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이 관계를 맺기 위한 조건물로 돈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헌금합니까?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24시간 언제라도 얼마든지 황금 판, 다이아몬드 판을 만들 수 있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살려 줄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헌금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서 헌금하고 세계를 위해서 헌금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구원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헌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생명을 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성 들이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쓰고 남은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 같은 것을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런 것은 과감히 잘라 버려야 합니다. 맨 처음 것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숫것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합니다. 숫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습니다. 새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습니다. 제물도 남이 남긴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더러움이 탔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곳에는 못 가게 합니다.
정성 들이고 은혜 받고 가는 대가로 감사헌금을 하도록 해야 됩니다. 시시한 돈은 하늘이 원치 않습니다. 정성 들인 돈이어야지, 주머니에 있던 돈을 그냥 헌금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몸에 3일 이상 지녀서 성별하고 헌금을 해야 됩니다. 자기 생명, 재산을 전부 넣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있는 재산을 다 바쳤습니다. 그 바친 물건을 통해서 세계의 물질이 건너올 수 있게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아남습니다.
정성 들인 헌금이나 예물을 대할 때 그 가치를 모르고 대하다가는 정성 들인 예물에게 심판을 당합니다. 군왕도 처신을 잘못하다가는, 즉 정성 들인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그 군왕을 따르던 사람들도 정성 들이는 사람을 반대하다가는 하늘의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정성 들이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기념하는 축하의 날에는 반드시 통일기와 더불어 선생님의 사진을 놓고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자기 가정을 대표해서 기념 예물을 봉헌해야 됩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먹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라와 자기 후손들 앞에 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잔치를 하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정성 들인 보답 물건을 봉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을 모시는 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