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교회를 중심삼고 누가 아벨이고 누가 가인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한 사람은 아벨이요 한 사람은 가인이라는 것, 세 사람이 있으면 두 사람은 아벨도 될 수 있고 가인도 될 수 있는데, 가장 중심적인 아벨과 가인이 있다는 것,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분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지 않고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한편은 바른손이고 한편은 왼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내 하나님인 동시에 네 하나님이요, 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입장에서 서로서로 아벨적인 존재를 찾아 모시며 가인적인 입장을 피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해야 됩니다.
제6절 가인 아벨의 섭리
가인 아벨의 논리는 위대한 논리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자기 자식을 희생시키더라도 나라의 젊은이를 위해서 제물 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세계에서만이 통일이 벌어집니다. 위하는 사랑에서만이 통일이 벌어집니다. 위하지 않는 사랑에는 사탄이 오가고 파괴가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그렇고, 만물의 소원이 그렇고, 인간의 소원이 그렇다면 3대 이상권의 소원을 가지고 살겠다는 사람이 있을 때 망할 수 있겠습니까? 찾아오는 천운은 그 사람을 보호하고, 천운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하고, 만물이 그 사람을 따라가기 때문에 죽을 자리에 가더라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을 것 같고 없어질 것 같은데 거기에서 새로운 길로 도약해 갈 수 있는 발전의 길을 가더라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길을 가는 데는 방해하고 막을 어떠한 무엇이 없습니다. 사탄도 여기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섭리로 본 가인 아벨
가인과 아벨이 다 같이 하나님에게 제물을 바쳤는데,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의 입장과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하나님의 입장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인에게 하늘의 입장을 대신했던 아벨을 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취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적인 차이는 있었을지라도 공평한 입장에서 그들을 대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우주적인 탄식의 고개를 넘어서 하나님이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제물로서 나타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온 우주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아벨적인 제단을 쌓고 아벨적인 제물로서 양을 잡아 바칠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생명의 실체를 바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벨은 복귀노정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명을 해야 됩니다. 아벨이라는 존재가 뜻 앞에 설정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만일 타락이 없었다면 아벨이라는 존재가 뜻 앞에 설정되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벨 혼자 있어서는 아벨이 설정될 수 없습니다. 가인이 없어서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아벨이 진정한 아벨로서 책정받는 자리에 설 때까지는 준비기간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 편에 서느냐 못 서느냐 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통일원리에서는 그것을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기간이라고 하는데, 그 기간은 제물을 드리는 기간입니다.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졌던 것을 다시 심정적으로 유대를 맺게 하고, 외적으로도 유대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벨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천사장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사탄인 천사장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틀림없는 상속자입니다.’라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때 천사장 입장의 사람은 가인이며, 아담의 입장의 사람은 아벨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거짓 부모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로 분립해서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즉, 아담 대신 아벨, 천사장 대신 가인을 세워 복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 심정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심정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찾아야 됩니다. 가인을 찾기 전에는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입장에서 종의 종 자리와 종의 자리를 거치고 양자의 자리를 거쳐 아들의 자리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굴복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아들의 책임이 끝나는 것이며, 그 자리에서 가인이 협조하는 입장에 서면 부모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전도하는 것은 첫째로는 가인을 만들기 위한 것이요, 둘째로는 아벨의 자리를 결정짓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벨적인 입장에서 전도하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입장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을 대신하여 종의 입장을 복귀한 시대에 조상들이 하지 못하였던 것을 대신해서 복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앞에 가인이 없다면 여러분은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되느냐? 가인과 아벨은 편안하고 좋은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이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탕감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다음에 하나님과 하나되고, 다음에 제물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탄을 입회시켜 판가리를 지어야 됩니다. 결판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어떠한 자리에서 결정하느냐?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에서 결정합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자리란 어떠한 자리냐? 하나님과 일체 된 자리인데, 그 자리는 기쁜 자리가 아니라 가장 슬픈 자리, 가장 어려운 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고자 하는 자리, 가장 비참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원리적인 입장에서 아벨은 무엇이냐? 중심입니다. 이 중심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들어가 계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벨이 되었습니까?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순종해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려면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다 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다 하지 못하면 아벨이 되지 못합니다. 아흔 아홉 가지를 다 했더라도 한 가지를 못하면 아벨이 못 됩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인간과 우주를 중심삼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쪽으로, 하루는 사탄 쪽으로 해서 전환 역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선악의 싸움이요, 가인 아벨의 싸움입니다. 복귀섭리는 곧 가인 아벨의 싸움입니다. 여기에 전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선생님이 역사성을 대표해서 가인 아벨의 문제를 덧붙여 나오게 되었느냐? 가인 아벨의 문제는 근본 문제입니다. 이것은 가정을 중심삼은 문제입니다. 아담 해와의 문제와 형제 문제 때문에 가정이 파괴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의 문제, 형제 문제를 중심삼고 복귀하려고 합니다. 원점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복될 수 있는 기준이 역사의 열쇠가 됩니다. 그것이 열쇠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의 문제와 가인 아벨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누가 아벨이냐
가인과 아벨을 어떻게 구별하느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에도 두 사람이 있으면 그 가운데에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아벨이고 어떠한 사람이 가인이냐 하면, 침해를 받는 사람이 아벨이고 가해를 하는 사람이 가인입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가서 괜히 ‘이 자식아!’라고 말 한마디라도 하게 되면 가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 앞에 두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부모의 의논 상대라든가 모든 면에 있어서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은 맏아들뿐이라 하더라도, 작은 아들이 아무 실수도 하지 않고 아무 잘못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맏아들이 작은아들에게 손을 대면 대번에 그 부모는 작은 아들 편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회에서 적용되는 선악의 비판 기준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해를 입히는 사람이 반드시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정성 들이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남달리 유난하게 저게 뭐야?’라며 흉을 보는 사람은 벌써 가인이 됩니다. 가인 아벨은 그렇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리에서 비판받는 사람,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벨이 되는 것이요, 비판하는 사람, 가해를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의 말을 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말을 하더라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벨이 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가인이 됩니다. 내가 남에게 이익을 끼친다는 것은 가해가 아니라 이익을 주는 것이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남에게 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이익이 되게 하기 위한 자리는 공적인 자리요, 자기 이익을 위한 자리는 사적인 자리입니다. 이렇듯 공과 사를 중심삼고 아벨과 가인, 선과 악은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보다 공적인 존재가 아벨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먼저 들어왔으니 아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먼저 들어왔어도 공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면 가인입니다. 틀림없이 가인입니다. 가인도 자기가 먼저 태어나긴 했지만 아벨보다 공적인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에 아벨을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아벨적인 존재는 보다 공적인 입장에 선 사람입니다. 공적인 길을 가려면 형제의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공적인 길을 가는 데는 횡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가는 데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 가는 비결은 공적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책임자는 무조건 자기가 아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아벨은 가인을 구해 줘야 되는것입니다. 그리고 가인하고 하나돼야 어머니한테 가는 것입니다. 책임자와 하나되지 못했어도 여러분끼리 하나되어 있으면 그 자리에는 책임자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기도하는 데는 언제나 하나님이 같이한다는 말을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지금까지의 책임자를 위주로 한 생각을 버리고 식구를 위주로 한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에 주인이 있으면, 그 주인은 자기보다 식구를 위주로 하는 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정천국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아벨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가인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아벨은 아담의 입장입니다. 아담의 입장인 아벨은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연을 못 맺은 것이 타락입니다. 둘째는 천사장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벨에게 있어서 천사장격 인물은 가인입니다. 아담이 있기 전에 천사장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있기 전에 가인이 먼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담 대신 아벨을 세우신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 앞에 아담이 하나되고, 아담 앞에 천사장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타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는 하나님과 아담이 하나되지 못하고 아담과 천사장이 하나되지 못한 것을 하나될 수 있게 땜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벨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아야 아벨이 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책임
하나님이 바라는 관에 입각하여 산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어떤 때는 개인적으로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을 가지고 식구들에게 분풀이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형제관계에서 먼저 나온 사람이 가인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구원해 놓아야 됩니다. 가인을 구해 놓지 않고는 아벨이 못 됩니다. 복귀된 가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아벨은 복귀된 가인의 입장입니다. 결국은 장자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있는 가인, 즉 사탄 편에 있는 그 형을 복귀시켜야 합니다. 복귀시키는데, 때려서 강제로 복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굴복시켜야 됩니다.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 주고, 새로운 국가관, 새로운 생활관, 새로운 미래관, 새로운 인격관, 새로운 혈통, 새로운 심정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다른 면모를 보여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생명을 다 바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인이 아벨 앞에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가인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벨에게도 적용되고 가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아벨이 가인을 구하려면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인을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가인이 아벨을 따라가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장자도 하나님의 것이요 차자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것이라 할 수 없고,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없는 이 원한의 구렁텅이를 격파해야 됩니다. 어디에 가서 하느냐? 천사세계에 가서 다 이겨서 해야 됩니다. 천사장은 양자권입니다. 아벨의 자리에 있다고 해도 아담의 아들딸이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복귀된 천사장의 자리에 설 수 있어도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 자리에는 못 서는 것입니다. 뿌리를 뒤집어 박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고향에 돌아가서 조상을 바꿔쳐야 할 운명이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조상을 세계에서 못 바꿔칩니다. 그다음에는 장자권을 바꿔쳐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주체가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참부모를 중심한 참아들딸이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 이들을 중심삼고 수평선으로 화(和)해야 됩니다.
탕감길은 누가 가느냐? 가인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이 가야 됩니다. 눈물을 흘려도 먼저 흘려야 되고, 배가 고파도 먼저 고파야 되고, 욕을 먹어도 먼저 먹어야 되고, 매를 맞아도 먼저 맞아야 됩니다. 그렇게 탕감길을 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들어왔다 하면 그 사람을 이끌어갈 수 있게끔 책임져야 됩니다. 밤을 새워 가며 그 사람의 지난 일을 들어 주고,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서 의논해 주고 눈물을 흘려 주고 기도해 주어야 됩니다. 돌아갈 때는 안심이 안 되어서 그 집 앞에까지 데려다 주고, 또 아침이 되면 안심이 안 되어서 그 집 앞에 가서 기다렸다가 만나고, 이럴 수 있어야 됩니다. 결국은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인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내 뒤를 정상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탕감길을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탕감길을 가야 됩니다.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최후에 가야 할 것은 혈통복귀입니다. 천사장의 혈통의 뿌리를 받았던 것을 아담의 혈통의 뿌리로 교체해야 됩니다. 그 뿌리가 그릇되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이냐 하면 거짓 사랑 때문입니다. 사탄 사랑, 사탄 생명, 사탄의 혈통, 여기서부터 뿌리가 연결되었으니 이것을 끊어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혈통을 투입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했습니다.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을 가지고 생명과 모든 피를 투입하라는 것입니다. 정성 들이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하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핏줄을 방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근본문제에 들어갑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하나님과 사탄의 작전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맞고 빼앗아 나오는 길이 아벨이 가는 길입니다. 사탄은 먼저 치기에 이긴 것 같지만 나중에는 가지고 있는 자기의 선한 것까지 플러스시켜 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편은 상대를 쳐서 점령했더라도 점령한 그것이 흥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편에 있는 선한 것까지 빼앗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찰떡을 쳐서 넘겨주었다가 그것을 찾아올 때는 찰떡에 보숭이를 묻혀 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때에는 악이 성해서 선을 치는 자리에 서지만 그런다고 해서 하늘이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은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아벨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우선 사탄을 대항해서 싸울 수 있어야 하고, 사탄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 내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픈 심정과 사탄세계에 묶여 있는 형제자매의 슬픈 심정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희생을 대가로 사탄세계에서 그들을 기꺼이 구해 내려고 해야 됩니다. 아벨이 희생하는 데서부터 복귀섭리는 진전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공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섭리의 한 단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