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경훈독실

제5절 참부모를 통해 완성하는 노정

1

하나님과 참부모와 나는 복귀를 완결시키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부모가 되어야 할 인간조상이 타락했으므로 타락의 동기를 넘기 위해서는 3자가 일치점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참부모의 뜻과 우리의 뜻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복귀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일치되는 자리에 도달해야 인류의 목적도 성취되는 것이며, 인류의 부모로 오시는 주님도 만민을 복귀시켰다는 기준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와 자녀가 하나됨으로써 하나님의 뜻인 본연의 동산을 이루어 그곳에서 부모와 자식이 영원히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는 가정의 인연을 갖추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완결된다는 것입니다.

2

아담 해와가 참사랑으로 완성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실체를 입은 소망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참된 부부로 완성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이상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아담 해와가 선한 자녀를 가져 참부모가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영존의 부모, 모든 사람들의 부모이신 것을 실제적으로 확정짓고, 또 하나님이 인간 혈대를 통하여 자자손손 번성함으로써 천상천국의 시민을 무한으로 두고 싶어하는 이상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정의 인연

3

하나님은 지금까지 역사를 두 가지 형태로 벌여 놓았습니다. 하나는 플러스요 하나는 마이너스인데, 이것이 합해져야 됩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하나로 종결되어야 합니다. 참부모에서 출발해야 할 역사인데 인간이 참부모를 잃어버리고 거짓 부모의 자식이 되었으니 참부모를 복귀하여 하나님 앞으로 다시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평화의 동산이 개방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심정적인 인연을 갖지 않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됩니다.

4

여러분은 가치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6천년의 심정과 소망의 존재인 참부모를 모실 수 있고 참부모의 자녀로서 인연을 맺고 나설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손가락과 머리카락 하나도 역사적인 것이요, 시대적인 것이요, 미래적인 것입니다. 즉 여러분은 새 시대의 조상으로 서야 할 엄숙한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5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의 사랑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 기준에 있어서 몸 마음이 참사랑으로 하나되고 부모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하고 참부모가 하나되어서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3대권이 생기는 것입니다. 심정적 3대 참사랑이란 하나님 사랑, 참부모 사랑, 그다음에는 참부부 사랑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인간세계에 비로소 착륙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런 자리를 거쳐 나가야 됩니다. 그러니 그 자리는 자기 몸 마음이 하나되고, 부부가 완전히 사랑해서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과 참부모의 사랑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6

여러분은 고향 땅을 찾고, 나라를 찾고, 지상 천상의 영원한 하늘나라를 찾기 위한 전통을 내 일신에서 찾아야 합니다. 아담이 잃어버렸던 것을 몽땅 내 사랑으로써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던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자기 혈족을 만나서 눈물을 흘려야 되고, 내 고향산천을 붙들고 눈물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연의 심정으로 사랑의 움이 터서 사랑의 꽃동산에 꽃이 피어나고 사랑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7

타락이 참사랑과 참생명, 그리고 참혈통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누가 잃어버렸느냐? 아담과 해와가 완성해야 될 것이었는데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완성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과 완전히 하나되고, 하나님의 생명과 완전히 하나되고, 하나님의 혈통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부자관계는 혈통이 아니면 맺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가정이 없었습니다.

8

참사랑은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언제라도 붙어 있습니다. 영원히 붙어 있습니다. 그런 참사랑을 인간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바라고 원합니다. 부모는 지옥에 있더라도 자기 아들딸을 생각합니다. 부모가 지옥에 있으면서 자기 아들딸이 지옥에 있다고 하면 거기서 고통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아들딸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9

우주 가운데서 영원·불변·절대의 원리는 원인과 결과,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인간사회에 적용한다면 부자관계와 부부관계가 그 핵심입니다. 하나는 종적인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또 하나는 횡적인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양자가 차원 높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으면서 종으로 합한 것이 새로운 주체가 되고 횡으로 합한 것이 새로운 대상이 되어, 원만한 수수작용을 통하여 혼연일체, 입체화해서 조화적인 구형운동으로 들어간 상태가 사랑을 중심한 힘의 작용이요, 인간사회의 기본단위인 이상적 가정의 모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을 가장 가치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

이 땅 위에서 중심 되는 인류의 조상을 중심삼고 이어 나오는 데 있어서 먼저 무엇이 설정돼야 하느냐? 부자관계가 설정되야 합니다. 남자로 태어나든지 여자로 태어나든지 간에 제일 먼저 맺게 되는 것이 부자관계입니다. 왜 부자관계이겠습니까? 그것은 천지가 그렇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종으로 내려오는 것이 부자관계입니다. 부자관계가 아니고는 종적으로 연결이 안 됩니다. 부자관계의 종적 연결은 생명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과 그다음에는 핏줄이 연결돼야 합니다. 부자관계는 그냥 안 됩니다. 핏줄이 연결돼야 합니다.

11

천주(天宙)의 ‘천(天)’이라는 것은 두(二) 사람(人)입니다. 그리고 ‘주(宙)’라는 것은 집을 말합니다. 우주도 그렇습니다. ‘천주’라는 것은 하늘을 중심으로 한 가정을 말합니다. 천운을 떠받치는 가정을 말합니다. 천운을 떠받치는 가정에는 종적으로 참부모인 창조주가 연결되고, 횡적으로 그 창조주와 90도의 결착점을 중심으로 연결됩니다. 종적인 참부모와 횡적인 참부모가 연결됩니다. 창조주와 창조된 자녀로서 부자관계입니다. 가정은 그것이 종적으로 움직이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종적 횡적인 관계가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창조목적 완성

12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하나님도 참된 사람,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자로서 최고로 바라는 것은, 통일교회의 술어로 말하면 완성한 사람입니다. 완성한 사람은 참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섭리를 추진시켜 나온 그 목적도 역시 완성한 사람인 동시에 참된 사람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된 사람입니다.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남성과 참된 여성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귀는 참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을 찾는 데는 창조원칙에 있어서 남자를 먼저 지었기 때문에 참된 남자를, 참된 남성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하나님이 본래 뜻하셨던, 소원하던 바의 목적을 달성해 보자는 것이 구원섭리의 목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13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창조이상을 완성하려는 뜻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의 완성, 창조이상의 완성입니다. 그것은 사위기대 완성입니다. 사위기대를 완성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늘과 땅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하늘과 땅이 비로소 정착하게 됩니다. 하늘은 위의 축과 같고 땅은 아래의 축과 같아서 이것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녀는 중앙의 축을 향해 하나될 수 있는 평면적인 형태를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자람으로써 중앙에 올라가서 하나의 원형을, 사랑의 이상구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14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관념적인 세계와 그런 상대로부터 위안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타락했지만 인간은 본래부터 영원한 천성과 통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마음 가운데는 창조이상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악을 벗고 완성하여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고 무한히 기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마음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깨우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하나의 기준을 세워서 보고 듣고 느끼는 마음의 중심을 천륜 앞에 세운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경배드리며 할렐루야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 가운데는 이러한 마음의 경지를 원하면서도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심각하게 파고들어 자기의 본성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