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이란 닦고 연단하는 것입니다. 닦고 연단하는 데는 무엇을 표준으로 할 것인가? 여러분 가운데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고깃덩이뿐인 겉사람과 다른 하나는 속사람이 그것인데, 타락한 입장에서 보면 타락한 겉사람과 타락한 속사람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본연의 인격체를 닮아 나가는 것입니다. 본연의 인격체란 만물이 경배하고 하나님이 품에 품으시고 입을 맞춰 줄 수 있는 어린애와 같은 모습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본연의 인격체를 표준으로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제1절 수련이란
분립으로 선의 대상 되기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얼마나 위했느냐? 통일교회를 위해서 내가 있었느냐, 나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있으라고 했느냐? 여기에서 선악의 기준이 분립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과 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뜻에서 어긋나게 될 때는 악과 선으로 갈라집니다. 선은 정상적인 궤도를 가고, 악은 비정상적인 궤도를 갑니다. 오늘날 인륜도덕이나 사회의 도덕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도 원리원칙이 있습니다. 원리는 나를 위하라고 하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하려고 하는 데서 원칙이 성립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24시간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통일교회 이미지가 나를 점령하고 있어야 됩니다. 꿈에서도 통일교회와 떨어져 있는 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고는 선한 하나님이 원하는 가정을 바랄 수 없습니다. 또 선한 하나님의 가정이 되지 않고는 선한 국가나 세계를 바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는 나 자신에서 해결점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경계선이 마음과 몸입니다.
고행으로 탕감받기
육신을 치는 방법이 바로 고행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몸이 원하는 것을 잘라 버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몸이 원하는 것을 없애야 됩니다.
역사시대에 그 어떠한 종교보다도 더 고행하는 종교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종교생활은 양심이 고문관이 되어 ‘이놈의 몸뚱이야, 이놈의 몸뚱이야!’라고 하며 완전히 죽어 넘어질 때까지 고문을 하고 항복을 받아 다시는 깨어나지 않게끔 점령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몸을 고문해야 됩니다.
종교는 왜 고행을 해야 됩니까? 왜 십자가를 져야 됩니까? 왜 희생봉사를 해야 됩니까? 그것은 모든 인간이 싫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타락한 세계에서 종교는 출가를 강조해 온 것입니다.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통일교회 축복은 완전부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개인 부정으로부터 가정 부정, 종족 부정, 민족 부정, 세계 부정, 사상 부정까지 모든 것을 부정해 왔습니다. 그 부정하는 단계가 높아 감에 따라 자기 가치가 축적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부정하는 발판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내 본연의 인격의 축적은 높아집니다.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현실을 부정하고 출가를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고행길을 갑니다. 몸이 좋아하는 것은 발로 차 버리라는 것입니다. 육적 눈이 좋아하는 대로 가다 보면 마음의 눈은 싫어합니다. 전부 반대입니다. 인간이 모순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도 타락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모순된 자아 발견, 이것이 위대한 발견입니다. 역사에 있어서 어떠한 발견보다도 위대합니다. 타락이 어떻게 됐는지 안다고 하면, 그것이 무엇보다 놀라운 것입니다. 이 혼돈 가운데서 해방되는 길이 있다면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책임노정입니다.
복귀탕감이 아니라 탕감복귀입니다. 복귀탕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귀탕감이란 개념이 에덴동산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랬다면 아담 해와를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해 핏줄이 달라졌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씨가 달라졌습니다. 그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부정으로 본연의 길 찾기
복귀의 길에서는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원수입니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원수이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원수이고, 부모에게는 자녀가 원수이고 자녀에게는 부모가 원수이고, 그 부모의 일족 앞에는 종족이 원수이고 종족은 민족이 원수입니다. 전부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한꺼번에 청산하기 위해서는 전부 부정해야 됩니다. 자기 일족 사위기대를 잃어버린 슬픔도 체험을 못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수천대를 연장하면서 지금까지 사위기대 복귀를 소망하고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천년만년 효도하더라도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죄인 중의 죄인 같은 자신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탄의 핏줄을 부정하고 다시 돌이켜야 됩니다. 순결·순혈입니다. 순결혈통·순결사랑을 중심삼은 가정 기반 위에서 효자가 돼야 합니다. 가정적 효자가 못 돼 있습니다. 국가적 충신 효자가 못 돼 있습니다. 가정적 순효자(純孝子), 가정적 순충신(純忠臣), 가정적 충성인(忠聖人)·충성자(忠聖子)가 돼야 합니다. 하늘땅을 대신하여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못 돼 있기 때문에 이것을 여러분 일대에서 이루어야 됩니다.
자기를 위하는 세상은 망했습니다. 타락은 자기 자체를 먼저 자각하고 중심 자리에 선 것이니만큼 그것을 부정해야 됩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전체를 살게 하고 난 후에 내가 거기에 꽃이 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꽃의 향기는 1년 자란 꽃이라도 뿌리와 줄기, 가지의 모든 영양소를 흡수해서 꽃이 핀 이후에야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체를 위하는 사람이 되어 꽃이 피고 향기가 나야 하나님이 찾아오고 천사들이 날아 들어와 보호하게 됩니다. 그것이 천지의 소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선물을 갖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찾아올 때 ‘야, 참 고맙다!’라고 할 수 있는 선물을 갖고 있느냐, 하나님이 찾아올 때 가정적으로 선한 선물을 드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부부가 되어 있으면 부부가 하나님이 찾아올 때 선물로 드릴 것은 딴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된 부부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된 부부인데, 그 부부가 어떤 부부냐? 자기를 위해서 사는 부부가 아니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살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사는 부부입니다. 그 부부가 영원히 하나되겠다고 생식기를 붙들고 영원히 가겠다고 하는 그 가정을 하나님이 선물로 받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해서 비로소 아들딸을 낳아야만 실체적 하나님의 모양이 됩니다. 그러나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천사장의 아들딸이 됐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부정해야 합니다. 핏줄을 더럽혔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자와 내일 모레 결혼하려고 하는데 산적이 훔쳐 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산에 들어가 도적질한 물건을 가지고 먹고살고 아들딸을 낳아 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 옛날에 결혼 약속을 했던 남자가 그 모습을 봤을 때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고 해도 천사장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천사장을 못 죽이는 상황에서 그 피 살이 섞인 아들딸 전체를 죽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어의 몸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기 전에는 본연의 창조의 원자재, 본연의 그 원자재의 자리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갈라진 틈이 없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본연의 사랑이상 가정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사탄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물이 들어와서는 안 되고, 공기가 들어와서는 안 되고, 빛이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사랑을 받기 위한 자리에 서려면 주체와 대상의 자리에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주체는 완전히 주려고 해야 되고, 대상은 완전히 받으려고 할 때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100을 주려고 하는 주체가 있으면, 나는 100을 받아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하늘이 100을 주려고 하는데 우리 인간이 자기 생각과 자기주장이라든가 자기 욕망을 중심삼고 받으려고 하면, 100을 채울 수 있는 자리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자기 욕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그것이 80, 70, 60, 50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을 다 받을 수 없습니다. ‘100을 완전히 받으려면, 너에게 있는 모든 것을 비워 버려라. 모든 것을 없애 버려라. 모든 것을 부인해라. 여기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려라.’라고 해야 됩니다. 전체를 포기하고 절대복종하는 것입니다. 복종이 나쁜 줄 알았더니, 복종을 완전히 해 나가면 그 사람을 점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영원히 남을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계급을 초월해서, 동서남북을 초월해서, 인종을 초월하고 역사과정에 설정된 전통을 넘어서서 영원히 도와주면서 살고 갔다 할 때는 그 사람은 선한 사람입니다. 내가 영원히 남을 위해서 주다 보니 비어 있게 되어 저기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체를 딴 데로 밀어내기 때문에 저세계의 주변은 고기압권이 생깁니다. 그래서 숨이 멎게 될 때는 그 고기압이 한꺼번에 몰아칩니다. 천년 쌓아둔 것이 순식간에 올라와서 나를 한꺼번에 수천만년 꼭대기에 올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승리자가 되는 길
하나님이나 인간이나 아직까지 뜻을 성취하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뜻을 성취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인간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한 연고로 이 뜻이 실패하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이 뜻을 수습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이요 섭리노정입니다. 이 뜻이 이루어지려면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오랜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요셉 가정을 택해 뜻을 받들 수 있는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늘의 인연을 땅에 연결시키는 책임을 못하게 될 때에는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방향조차 갖추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섭리노정을 통해서 잘 배웠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보면, 통일교회가 뜻을 성취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뜻은 개인에게 해당되는 것도 있고 전체에게 해당되는 것도 있습니다. 개인에 해당되는 뜻을 대할 수 있는 사람과 전체에 해당되는 뜻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는 그 뜻을 성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뜻이 성사될 수 있는 때를 맞이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책임 수행을 하지 못하게 되면 뜻을 성사할 수 있는 한때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뜻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필요하고, 그다음에는 때가 문제 됩니다. 언제든지 때라는 것이 문제 됩니다. 그와 동시에 때와 사람 사이에 관계되어서 뜻을 성취시킬 수 있는 조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가 맡은 전문분야인 만민을 구원하는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 먼저 어떠한 입장에 서야 하느냐? 그분도 역시 전심전력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나 깨나 일구월심, 자기의 모든 것을 여기에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것은 어떠한 명령을 받는 입장이나 강요당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그것을 통하여 자기 희망이 싹트고, 행복의 여건이 제시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기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식이면 자식, 전도된 사람이면 전도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울타리를 만들어서 그 울타리에서는 어떠한 비밀도 자유자재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어도 우리를 사탄세계로 옮길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이 이루어져야만 하나님은 여기에서부터 절대적인 뜻을 펴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여러분이 전문가로서 책임을 지고 수행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잘 알아야 됩니다.
승리자가 되려는 자에게 부딪혀 오는 모든 환경여건은 협조하는 환경이 아니라 반대하는 환경입니다. 그럴 때 그 환경을 감당해 내야 하고 마음만은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이 마음은 역사적인 피와 눈물과 땀으로 얼룩져 우리에게까지 연결돼 나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에도 마음만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승리하고 싶은 이 욕구의 심정을 빼앗아갈 수 없다.’라는 자신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자신이 없는 승리는 우연한 승리입니다. 그러한 승리 말고 자신이 있는 절대적인 승리를 해야 됩니다. 그러한 승리는 역사적인 승리인 동시에 창조이상의 승리입니다. 신념에 불타는 승리적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시련이라도 이겨내기 전에는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없습니다.
원리를 배우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알게 되기에 안 갈 수 없고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이므로 그 노정에서 패배자가 되지 말고 승리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혼자 싸웠지만 승리한 기준이 있으므로 여러분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있는 한 염려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 나가면 승리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선생님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자신을 갖고 힘차게 돌격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부하를 더 잘 먹이고 더 잘 입혀 주고 싶어해야 하지만, 만일 그가 위급할 때는 비참한 길로 몰아서라도 보내야 합니다. 모세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민족을 떠나 40일 기도를 했겠습니까? 모세는 그들 앞에 폭풍우가 불어닥칠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도 이 길을 걸어오는 식구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지만, 그럴수록 그들을 내몰아서라도 하루바삐 천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죄인으로 형무소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철창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호소하던 선조가 있었다는 것을 잊으면 망합니다. 승리는 눈물과 피땀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효자 못지않게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늘은 선을 지향하는 사람의 보호자라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일할 때마다 하늘은 살길을 열어 주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세 가지만 하면 승리는 결정되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지탱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몇 십년 가느냐, 아니면 몇 년 가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노력과 지구력에 좌우됩니다. 첫째는 ‘이념적으로 제패하라.’, 둘째는 ‘정성과 충성에서 누구보다도 앞서라.’, 셋째는 ‘선한 일에 최고로 앞장서라.’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만 실천하면 앞으로의 승리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과는 지탱하는 힘과 기간, 그리고 노력에 따라 좌우됩니다. 승리를 얻는 것은 여러분의 노력 여하에 따라 7년이 5년으로 단축될 수도 있고, 1년으로 단축될 수도 있습니다.
승리 중에서 최고의 승리는 어떤 것이냐? 본래 인간은 승리의 본향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자리에서 승리의 세계를 찾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찾아 나가는 표준이 무엇이냐 하면 인격완성을 이룬 자리입니다. 물론 인격도 필요하겠지만 그 인격을 움직일 수 있는 내심적인 핵, 즉 사랑이 더 필요합니다.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말보다도 사실이 필요하고 변명보다도 실적이 필요합니다.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실적 앞에 결과는 삼엄한 것이요 냉정한 것입니다. 옳으면 옳은 것으로, 나쁘면 나쁜 것으로 귀결됩니다. 승리는 승리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패자는 패자로 서러움과 비참함과 더불어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판단의 노정입니다.
옛날같이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조상들과 저나라에 가 있는 종주, 왕, 그리고 하나님이 모두 일체가 되어 하늘나라의 핏줄을 전수해서 사탄세계의 핏줄을 지상에서 완전히 청산짓고 하나의 대가족 형제들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하나의 대가족으로부터 한 나라, 하나의 문화세계, 아담 문화세계, 아담 절대·유일·불변·영원한 문화의 세계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 내 책임입니다. 내가 책임을 해야 됩니다. 지금은 우리라는 말이 없습니다. 내 몸 마음이 하나되고, 그다음에 내 가정이 하나되고, 내 일족이 하나되어 국가권·세계권 나라에 접붙여서 돌감람나무 밭을 완전히 참감람나무 밭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이상가정을 못 만든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인류의 조상과 여러분 자손들이 책임을 해야 됩니다. 이상가정을 하나님이 갖다가 줄 수 없습니다. 파탄시킨 장본인이 고쳐야 됩니다. 이상가정, 평화이상세계왕국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죄 중에 엄청난 죄입니다. 절대적이고 유일·불변·영원한 하나님이 만드는 데 오차가 있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