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우주의 법도에 따라서 변함없이 공전하고 있습니다. 지구 자체가 그렇거니와 태양 자체도 자전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130만 배나 되는 태양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이런 태양계의 수천억 배나 되는 광대한 은하계가 있습니다. 이런 은하계를 소우주라고 하는데, 우주에는 은하계와 같은 성운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틀어서 대우주라고 합니다. 반경만 해도 수천억 광년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대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그 대우주를 변함없는 법도에 따라서 수억만년 움직여 나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위대한 힘을 가지고 모든 천체를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는 그 웅장함과 위대함에 자연히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대우주를 창조하신 그분이 우리를 지켜 주시는 아버지요,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요, 실존하시는 위대한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제3절 우주의 질서와 공법
대우주를 볼 때 우주가 무질서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단위를 구성하는 공식 위에 우주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움직인다 해도 착오 없이 움직입니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도 공식상의 발달입니다. 수학을 통해서 모든 것을 풀어대는 것도 공식을 연결시켜 푸는 거와 마찬가지로, 과학문명은 공식상의 발달을 하는 것입니다. 공식은 단위적 완성입니다. 단위를 연결시켜야 됩니다. 그것은 출발과 끝이 완전히 연결되어 맞아야 됩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에도 많은 공식을 통한 결론은, 전부 본연에서 제시한 이상의 길과 풀어서 돌아가는 것이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막연히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서가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순환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운동은 수많은 모양으로 갖춰 나가지만, 거기에도 하나의 주류가 있습니다. 그것이 큰 강을 중심삼고 볼 때, 지류와 주류가 마찬가지 입장에서 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우주도 하나의 축을 중심삼고, 주류와 같은 흐름을 따라 운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착점에 선 이 세계는, 이 우주는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고 움직인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어야 됩니다. 유일·불변·영원하셔야 됩니다. 그분이 정한 법도는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는 그 법도에 따라서 천년만년, 몇 억만년 운동을 계속합니다. 미물인 동물세계라든가 식물세계도 그런 과학적인 공식 법도에 의한 터전 위에서 존속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으로 다 풀 수 있습니다. 미물인 동물도 그렇고 식물도 그렇고 대우주의 운행하는 모든 것도 법도 위에 서서 영원한 궤도를 따라 존속하기를 바라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주먹구구식으로 제멋대로 되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광대무변한 대우주는 하나의 공식 원리를 통해 운동합니다. 공식은 단위를 통해서, 단위를 결속시켜서 이뤄집니다. 이 우주는 공식을 바탕으로 한 형식을 통해 창건된 세계이기 때문에 공식에 들어맞습니다. 그래서 수학으로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전기도 수학으로 풀잖아요? 수학은 공식을 활용해서 풀어 나갑니다. 공식은 단위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 둘 셋이라는 단위를 통해서 나옵니다. 그러니 단위가 맞아야 되고 공식에 맞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한 답이 안 나옵니다.
자연계라든가 이 세계의 움직임을 보더라도, 무한 광대한 대우주를 보더라도 우리는 볼 수 없지만 전부 우주의 공법에 의해 변함없는 회전운동을 하면서 궤도를 따라서 영원히 존속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지나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게 되면 겨울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겨울이 가게 되면 또 봄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주는 자기 갈 길을 따라서, 춘하추동 궤도를 스스로 맞추어 가지고 자전하면서 자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가정을 확대한 것입니다. 가정을 보게 되면 상·중·하가 있고, 좌우가 있고, 전후가 있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상하를 말할 때는 부모와 자녀를 말하고, 좌우를 말할 때는 남편과 아내를 말하고, 전후를 말할 때는 형제를 말합니다. 이러한 전체가 무엇으로 하나가 되느냐? 힘으로, 지식으로, 돈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으로 할 수 있느냐? 사랑입니다. 사랑도 보통 사랑이 아닙니다. 참사랑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진리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구형이 안 됩니다. 그러면 상·중·하는 가정에 있어서 무엇이냐? 사랑의 교재입니다. 우주 사랑을 접할 수 있는 사랑의 교재입니다. 그와 같은 것을 사회에 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을 세우기 위해 우주가 있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이 세계가 일정하게 달라지느냐? 봄철에 짹짹거리는 참새들도 그러는 것을 볼 때 ‘야, 우리 부처가 참새보다 나으냐?’라고 생각하고, 제비가 먹이를 물어다가 자기 새끼에게 먹이는 것을 볼 때 ‘야, 자식을 저렇게 사랑해 주는 게 원칙이구나.’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다 같은 법입니다. 그 어미가 배가 불러 먹을 수 없어서 새끼들에게 물어다 먹이겠습니까? 자기가 배고파도 물어다 먹인다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에서는 이런 사랑의 공법을 어디서 찾느냐? 선생님에게서도 찾을 수 없고, 나라님에게서도 찾을 수 없고, 남편에게서도 찾을 수 없고, 아내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데,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만은 그것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만은 그것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춘하추동 사계절에 순응해야 됩니다. 겨울인데도 ‘아이고, 나는 여름을 좋아하기 때문에 모시 적삼 치마저고리를 입어야 되겠다.’라고 하면 죽습니다. 보조를 맞춰야 됩니다. 봄이 되면 봄옷을 입어야 됩니다. 갈아입지 않으면 지장이 오고 파탄이 벌어집니다. 겨울이 되면 겨울옷으로 갈아입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천지의 법도, 천리의 법도에 그 환경과 처지에서 순응할 뿐만 아니라 맞출 줄 알아야만 천리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거기에서 살아남아야 생명체로서 영원한 우주 앞에 주체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우주는 운동의 법칙, 힘의 작용의 원칙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우주의 박자에 맞는 천운의 법도에 맞추어 갑니다. 그 천운의 법도에 맞추어 가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위기대의 법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사위기대의 법도에 자신을 부합시켜서 사위기대의 법도를 옹호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부실하면 불합격자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부부간에 아무리 잘 주고 잘 받는다 해도 결과적 존재인 자녀가 없으면 불행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법도와 원칙이 사위기대를 중심삼고 돌고 있는데, 삼위기대밖에 못 이루게 되면 영원히 도는 사위기대 법도 앞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니 자연히 슬퍼지는 것입니다.
기쁨은 어디서 오는가? 마음의 요구에 몸이 응할 때 생깁니다. 마음과 몸이 완전한 주체와 대상이 되어 사위기대를 이루게 되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칙인 천운이 옹호해 주니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단축되어 가까워지기 때문에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심에 가책되는 일을 하여 마음의 상대요소가 없게 될 때는 결국 그 주체까지도 없어집니다. 우주의 원칙은 주체만 있게 되면, 대상이 반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몰아내는 힘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슬픔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은 내가 원인이 되어 생깁니다.
가슴이 아프게 슬플 때도 있는데, 왜 슬프냐? 무슨 힘이 나에게 작용해서 슬프냐? 그것은 우주의 대운세에 생명력을 좌우할 수 있는 우주의 공법 작용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공법에 부합되지 못하고 반대되면 제거당합니다. 우주의 힘은 밀기도 하고 잡아당기기도 합니다. 여기서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는 힘이 크면 클수록 기쁠 수가 없습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가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 울게 됩니다. 그것은 우주의 공법 앞에 불합격 기준에 해당하면 우주의 공적인 힘이 그 사람을 밀어내게 되고, 또 그렇게 될 때에 슬픔의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쁨은 어떻게 생기느냐? 우주 공법에 일치되는 자체가 되면 우주의 힘이 그를 안으려고 합니다. 그 힘이 크면 클수록 강하게 부여안게 되고, 강하게 안으면 안을수록 그는 내적인 중심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픔과 기쁨은 자기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힘의 원칙, 즉 우주 공법을 중심삼고 벌어집니다.
공존하는 우주를 바라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화합작용과 반발작용이 있습니다. 화합작용은 더 큰 데로 화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화합하려고 하는데 더 큰 데로 화합하려고 합니다. 화합하는 데는 그냥 하지 않습니다. 돌면서 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둘이 합하려면, 서로가 좋아서 합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나 자체가 자기를 넘어서 상대를 감쌀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나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넘어서 큰 힘으로 품으려고 하는 것이 있어야 하나됩니다. 자기보다 작게 만들려고 하는 데서는 절대 하나 안 됩니다. 자기를 넘어서 더 큰 것을 품으려고 하는 서로의 작용을 갖게 되면 그것은 우주력이 보호합니다. 그것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입니다.
아프다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의 모든 기관에 있어서 균형을 취할 수 있는 일면이 파괴되었을 때 그것을 빨리 시정하지 않으면 우주는 ‘너는 현재 공존 원칙의 기준에 불합격자다.’라고 하면서 몰아냅니다. 그 몰아내는 힘 때문에 아픔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슬픔은 왜 오느냐?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이 평화스러운 경지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환경과 하나되어 우주의 더 큰 세계로 전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화하는 자리에 선다면 거기는 우주가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우주 전체 세계에 있어서 서로가 연결되어 공존할 수 있는 연체적 작용권을 이루고 있으면 서로서로가 상응하는 입장에서 보호해 주는데, 거기에 상반될 때는 반드시 우주력이 몰아냅니다. 이것이 슬픔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상대이념을 갖추지 않은 존재는 존속할 수 없습니다. 상대이념을 갖춘 사람은 보호합니다. 반드시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살려고 할 때는 전 우주가 보호합니다. 전후좌우에서 이것을 침범할 자가 없습니다. 병난 것은, 몸에 주고받는 길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막혀 있는 것입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길이 막혀 있는 것입니다. 막혀 있으면 우주에 불합격자입니다. 상대이상을 갖추고 있어야 보호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불합격된 그 비율만큼 냅다 모는 것입니다. 냅다 모는 작용이 아픔으로 나타납니다. 누르면 아프지요? 병이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력이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네가 수수작용을 못해서, 주체와 대상의 화합관계를 이루지 못해서 그래. 네 몸이 반드시 이 막힌 것을 터서 화합시키지 않으면 우주의 폐물 단지로 들어가는 거야.’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화합하는 것을 보호하게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