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경훈독실

제2절 참사랑의 근원

1

참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느냐? 여러분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참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이 참사랑의 이상상대가 필요해서 이 세상을 지었습니다. 천지창조도 참사랑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의 개념은 반드시 상대적 세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상대 개념을 떠나서는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되고, 오른쪽이 있으면 왼쪽이 있어야 되고,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어야 됩니다. 상하·전후·좌우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연결되어서 하나의 구형이 이루어집니다. 창조 전 하나님에게도 몸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자리에서, 상충이 없는 사랑 가운데 이상적 사랑의 세계 실현을 꿈꾸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은한 사랑이 아니라 폭발적인 사랑, 360도를 회전할 수 있는 사랑을 바라십니다. 그런 사랑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 만들기 위해서 천지창조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근원

2

여러분 가운데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주의 근본을 찾아 들어가서 우주의 근본이 뭐냐 하고 궁금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제시하고 우주의 근본을 찾아들어 갈 때, 우주의 근본은 이 만상의 세계를 대신해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근본은 무엇이냐? 생명입니다. 생명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는 인간 이상의 것으로 올라갑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명사를 들고 나오게 될 때, 그 사랑이라는 명사는 혼자서는 성립될 수 없는 말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가질 때에 쓸 수 있는 말입니다.

3

사랑이란 말은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입니다.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혼자 계시면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가 있어야 사랑이 성립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를 지은 목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기쁘기 위해서입니다. 기쁜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기쁜 것이냐? 보고서 기쁜 것이 아니요, 말하고 기쁜 것이 아니요, 만져 보고 기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기쁜 것입니다. 따라서 기쁨을 성사하기 위해서 만물 창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4

사랑은 나에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받으려면 내가 문을 활짝 열고 그를 위해서 투입해야 됩니다. 밀어줘야 됩니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참사랑을 차지하고 있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게 될 때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상대에 대해서 하나님이 전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가치 있는 전체를 투입한 것입니다.

5

참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사랑의 이상을 걸고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지으신 물건을 위해 수천년의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하나님이 인류 앞에 그렇게 배반당하고, 그렇게 수욕을 당했지만 잊어버리고 또, 또, 또, 또 계속해서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이 땅에, 타락한 인간세계에 남아 있는데 그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참된 부모의 사랑은 무엇이냐? 자식을 사랑할 때 ‘아이고, 내가 이것 전부 이자 쳐서 받겠다!’라는 마음을 가진 부모는 참된 부모가 아닙니다. 밤낮으로 희생하면서도 위하여 사랑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어떤 자리에 가서도 잊지 않고 더 해주려고 하고, 24시간 거리를 초월하여 그를 위하려고 하는 사랑이 본질적인 사랑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기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을 구도할 수 있고 구원할 수 있는 기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6

사랑은 자기를 중심으로 한 입장에서 하게 되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상대를 대신하여 상대의 입장을 옹호하고 받드는 데서, 상대의 입장을 세우는 데서 비로소 사랑이란 말이 성립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야, 이놈아! 너는 내 종이다.’라고 말합니까? 상대를 누구보다도 높여 주고, 누구보다도 위해 주고, 상대로 말미암아 있고자 하는 자리에서 사랑이 성립됩니다. 나를 중심삼고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라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7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한 것은 하나님도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란 말은 상대적 관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이란 말도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지고, 좋다는 말도 상대적 관계에서 벌어집니다. 자기 혼자서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혼자 좋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좋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바란다 하는 것은 차원 높은 의미의 상대적 관계를 요구하는 데서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행복 요건의 등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8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고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를 통해서만이 관계가 맺어지지, 상대가 없어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상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유물입니다. 우주의 모든 전체를 품을 수 있는 힘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오기 때문에 상대가 없게 될 때는 사랑을 느낄 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작용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9

부모의 사랑이 좋고 부부의 사랑이 좋다 할 때, 진짜 사랑은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남편 아내로부터 사랑이 생겨나고, 아들 형제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자기 혼자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인은 상대입니다.

상대를 위해 무한히 투입하는 참사랑

10

하나님의 참사랑은 상대를 위하여 무한히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진 부모는 모든 자식이 부모보다 더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식을 위하여 크게 주고, 또 더 크게 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역시 상대방이 자신보다 더 잘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상대를 위하여 투입하고, 또 투입하고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참사랑은 상대를 위하여 투입하고, 또 투입하려는 데서 그 작용이 유발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간을 위하여 참사랑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주고, 또 주는 작용을 계속함으로써 영존하시는 것입니다.

11

하나님도 인간을 위해 투입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위하는 천리의 존재세계 앞에 자기 스스로 존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됩니다. 위하는 데서만이 동서고금을 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 같은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양·서양을 극복할 수 있고 과거·현재·미래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극복할 수 있으니 언제나 발전할 수 있고, 동서양을 극복하니 동서양을 통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에서만 가능합니다.

12

자기 사랑의 상대가,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한테서 왔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사랑의 상대가, 자기 아들딸이 하나님보다 낫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 나은 아들딸, 나은 사랑의 상대를 짓게 될 때는 자기 이상의 것을 투입해야 됩니다. 천배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만배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투입한다는 개념이 없을 때는 그 이상의 상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주고도 또 주고 싶고, 천년을 살았어도 또 주고 싶은 마음의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상대를 그 한계성까지 짓고도 또 짓고 싶어하는 논리를 갖고 있으니 그 하나님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이상 투입해야 됩니다. 참사랑은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하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데에 근거지가 있는 것입니다.

13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기 때문에 자기 이상 천배 만배를 그려 가면서 투입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가진 분입니다. 투입하고는 잊어버립니다. 사랑은 무한히 투입하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가 생겨납니다. 투입하다 보면 자동적으로 올라갑니다. 순환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순환하는 구형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은 내 소유로 할 수 있고, 천상세계 사랑의 소유권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상속권이 있고 동거권과 동참권이 있기 때문에 그 활동무대는 내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참 지혜의 왕입니다. 왜 투입하고 잊어버리느냐? 그래야 투입하고도 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적 순환원리를 통해서 영원한 회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영생의 논리가 설정됩니다. 투입하고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영생의 논리가 벌어집니다.

14

사랑하고 잊어버리고 또 사랑하려고 하는 곳에, 생명을 투입하고도 잊어버리고 또 투입하는 곳에 참사랑이 거합니다. 가치 있는 것을 한꺼번에 전부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왜 잊어버려야 되느냐? 더 주려고 하니까 잊어버려야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주고 잊어버리는 사랑입니다. 그것을 전부 노트에다 치부해서 받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젖을, 생명을 나눠 주면서도 좋아합니다. 타락한 어머니도 그런 심정인데, 여러분은 그 이상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투입하고도 잊어버리는 사람 가운데는 참사랑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15

참사랑은 자기를 완전히 투입하는 데서 생겨납니다. 자기 생명도 잊어버릴 때까지 전부 희생한 거기에서부터 참사랑은 이어집니다. 생명을 투입한 이상의 입장에서 참사랑은 이어집니다. 참사랑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생명 이상으로 투입하지 않으면 참사랑으로 이어지는 길이 없습니다. 참사랑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자기의 전부를 희생하지 않으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16

사랑은 주면 줄수록 생기는 것이요, 끝이 안 나는 것입니다. 더 가중적으로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모두 끝이 납니다. 돈도, 지식도, 권력도 끝이 납니다. 세상만사의 모든 인간 사정, 인정을 통한 것은 다 끝이 나지만, 영원한 참사랑은 아무리 주더라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더 무한에 가까운 내용이 영속적으로 계속되는 놀라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힘을 가지고는 우주를 작용시키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17

가짜 사랑과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다르냐? 가짜 사랑은 시작했다가 자꾸 떨어져 내려가는 사랑이요, 진짜 사랑은 시작하여 점점점 올라가는 사랑입니다. 자꾸 크기 때문에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면 큰 세계까지입니다. 자꾸 품는 것입니다. 그런 무한한 포용의 마음, 품어 주는 포용의 마음, ‘더 품겠다, 더 품겠다.’라는 본질의 마음 작용을 가진 것이 사랑 외에는 없습니다. 참사랑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18

사랑이란 하고 또 해도 끝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있는 정성을 다하여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안팎으로 걸릴 것 없이 키웠는데, 만약 그 자식이 죽었다면 ‘난 너를 위해서 다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는 없습니다. 사랑의 길이란 진정 좋은 것을 주고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주고도 그것을 자랑의 조건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숙이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사랑입니다.

참사랑의 본질은 남을 위해 베푸는 것

19

참사랑이란 어떤 사랑입니까? 참사랑의 본질은 위함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해, 전체를 위해 먼저 베푸는 것입니다. 주고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않고 끊임없이 베푸는 사랑입니다. 기쁨으로 주는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가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면서 기쁨과 사랑의 심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 효도하며 기쁨을 느끼는 그런 희생적 사랑입니다.

20

참사랑은 보다 위하는 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높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자기보다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이 모든 사랑의 본질입니다. 인간세계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보다 높고, 하나님과 같이 높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대적 입장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이 자기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투입하고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연적 사랑입니다.

21

사랑이 가는 본질적 성격은 자기를 위하는 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위하려고 하는 데서 사랑이 번식됩니다. 자기를 중심삼은 사랑은 소모되지만 위하는 사랑은 번식됩니다. 커 간다는 것입니다. 위해서 사랑하려는 데는 번식이 벌어져 자꾸 확장되지만, 자기를 위하라는 사랑에서는 자꾸 축소가 됩니다. 사랑의 본질은 위하려고 할 때는 커지지만 자기를 위하라고 할 때는 점점점 더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22

진정한 사랑은 주고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위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나서 ‘나를 생각해서 내가 너를 사랑했다.’라는 그 자리로 가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 그 이상 많은 것을 느끼는 사람은 사랑의 원칙에 합격자가 될 수 있지만, ‘내가 너를 사랑했으니까 너도 나를 사랑해야 된다.’라는 사람은 이상적인 사랑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 것입니다.

23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때, ‘내가 너에게 아무 날 고무신을 사 주었고, 옷을 사 주었고, 너를 위해서 피땀을 흘렸는데 그 가치는 얼마다.’라고 하면서 장부에 적어 놓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데는 세상의 어떤 왕궁의 왕자 왕녀 이상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내가 정성을 다해도 이것밖에 해줄 수 없으니 미안하다.’라고 하면서 해줍니다. 그 이상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을 부모는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주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사랑하고도 덜 사랑한 것이 있지 않나 하며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 주고 나서 섭섭하고 안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과 통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출발의 전통적 동기입니다.

24

참사랑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사랑이란 위해 줌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상대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해야 됩니다. 나를 위하라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면 모두 도망가 버립니다. 이기적인 개인주의는 사탄의 전략이요 목적이요 도구입니다. 그 결과는 지옥일 뿐입니다. 전체를 위해야 됩니다. 남을 위해, 전체를 위해 희생봉사하게 되면 전부 와서 나를 사랑해 줍니다.

25

부모의 사랑이 왜 귀합니까? 이는 종적인 사랑이지만, 종적인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사랑이 깃들게 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가 그릇될까 봐 생활을 통해서 자녀의 길잡이가 되려는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종적인 사랑은 반드시 횡적인 사랑을 창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도 이런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종횡으로 집약되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듯 종횡의 요소를 책임진 것이 부모의 사랑이기 때문에, 자기의 귀한 것을 그냥 그대로 자식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냥 그대로 받게 해서 횡적으로 넓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그런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이 왜 그러하냐?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체와 대상 간에는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원형을 그리는 것입니다. 주체는 종적이요 대상은 횡적이므로 이것이 90각도가 되어 원형을 그리게 됩니다.

26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횡적인 내용을 갖출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횡적인 아들딸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이 종적인 기준으로 넓힐 뿐만 아니라 횡적으로도 넓혀 나감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만유의 존재가 종적인 환경을 중심으로 횡적인 환경으로 넓어지게 되고, 세계와 천주까지 넓혀 나갑니다. 이 사랑의 마음이 동기가 되어서 세계를 지배하겠다, 무엇을 갖겠다, 무엇을 하면 좋겠다고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종횡의 사랑의 인연이 자신의 본질적인 마음 바탕에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본질적인 욕구에 의해 인간 욕망이 충족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생명보다 귀한 존재의 기원

27

부모는 자식이 죽을 곳에 가 있으면 그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집에 있는 모든 보물과 그 자식의 생명과 바꾸려고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보물보다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러면 사랑과 생명을 두고 볼 때 무엇이 귀합니까? 부부끼리 사는데,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뒷받침해서 사다 주는 보물은 천년만년 갖고 싶어하지만, 사랑 없이 갖다 주는 보물은 지니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물이란 환경이 변함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주 가운데서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중심으로 한 부부가 있다면 그것은 생명보다 귀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생명 때문에 사랑을 저버리지는 않지만, 사랑을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저버리는 것입니다.

28

세상에는 다이아몬드나 진주 같은 보석이 있습니다. 왜 이런 것들이 보석이냐? 다이아몬드는 굳기에 있어서 누가 침범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진주는 우아한 빛깔에 있어서 최고입니다. 그 어떤 것도 갖지 못하는, 천년만년 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우아한 빛깔을 갖고 있습니다. 황금이 왜 좋으냐? 황금은 누런빛에 있어서 변함이 없습니다. 천년만년 가더라도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 무엇이 없습니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소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세계에서 보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이런 보물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뭐냐? 보물은 생명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보물을 바꿀 수 없습니다.

29

천국에서, 하늘나라에서 정하는 제1의 가치 결정 기준이 사랑입니다. 생명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유일·불변·영원한 사랑입니다. 그 기준을 중심삼고 만사의 가치 기준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상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결정 기준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입니다. ‘저 사람은 인격자다. 저 사람은 가치적인 존재다.’라고 하는 것은 그런 기준에서 보는 것입니다.

30

모든 존재들의 공통분모가 생명입니다. 생명은 사랑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래서 생명보다 사랑이 귀합니다. 생명을 찾아 사랑을 희생시키겠다는 사람과, 사랑을 찾아 생명을 희생시키겠다는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보다 중심이냐? 어떤 사람이 보다 참에 가까우냐? 사랑을 찾아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보다 중심이요 참에 가깝습니다. 생명을 찾아 사랑을 희생시키는 것은 자기중심이지만, 사랑을 찾아 생명을 바치는 것은 자기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1

사랑은 생명을 굴복시킵니다. 생명을 좌우로 엇갈리게도 할 수 있는 힘이 사랑에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사랑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은 어떠할 것이냐?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약합니다. 생명의 절대적인 기준 그 자체라 하더라도 하나님보다 더 강력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 앞에는 굴복합니다. 생명의 힘까지도 움직여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의 힘입니다.

32

참된 사랑이란 어떤 것이냐? 인간세계에서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겠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이상, 진정한 첫사랑에 불타서 생사지경도 망각하고 돌진할 수 있는 힘이 폭발하는 그 이상의 사랑을 가지고 출발하는 길입니다. 죽을 자리에 있는 자식을 부모가 자기 생명을 버리고라도 보호하려는 사랑의 마음은 하늘의 사랑에 통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늘의 사랑은 출발하는 것입니다.

33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부터 뿌리를 박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하나님이 갖고 있다 하더라도 참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 앞에 모든 것을 다 투입하겠다는 것입니다. 투입하는데 나쁜 것부터 투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부터 투입합니다. 하나님에게 제일 좋은 것은 참사랑입니다. 그 참사랑을 사랑할 사람을 위해서 완전히 투입하는 것입니다.

34

우주의 근본 생성의 동기가 하나님이지만, 그 동기의 중심이 참사랑의 길을 세우려는 데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생각하기 전에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제2 대상을 존중시하고 모든 것을 그 앞에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결실체가 누구냐?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 투입한 그 자체에 사랑의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놀라운 사상입니다. 이것이 우주 생성, 우주 시발의 근원입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알기 좋은 말로 하면,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문제입니다. 천지를 왜 창조했느냐 하면 보기 좋아서 한 것이지만, 그것보다 사랑을 사랑답게 이루기 위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35

원인이 없는 데서는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몸 마음이 부모에게서 나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체가 화합하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조화시킵니다. 어머니의 내적인 몸과 마음, 아버지의 내적인 몸과 마음이 참사랑을 통해서 서로 조화가 됩니다. 생명력이 하나의 부체와 같이 되어 사랑을 중심삼고 핏줄이 연결됩니다. 내가 생겨나게 된 최초의 동기는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이 아닙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이 사랑에 의해서 연결되어 혈통을 통해 태어납니다. 어머니의 피와 아버지의 뼈를 받아 피 살을 연결시켜서 10개월이 지나 핏줄을 따라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력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태어난 ‘나’의 근본은 여러분 자신이 아닙니다. 근본은 어머니의 생명이요 아버지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하나되게 한 것은 생명에 앞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존재의 기원, 창조된 존재의 기원은 사랑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36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었을 때,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개념에 맞게끔 태어난 것이 아담 해와입니다. 볼록과 오목은 창조될 때부터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진화가 없습니다. 진화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개념 때문에 수놈 암놈이 생겨났다는 사실은 진화를 초월한 개념입니다.

37

여러분은 사랑과 생명과 혈통의 중요한 세 가지 본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셋을 완전히 하나 만드느냐 하는 것이 본궁의 목적입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하나 만들지, 그 외에 딴 길은 없습니다. 그 자리는 가장 비밀스럽고도 거룩한 곳입니다. 그런데 왜 나빠졌느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사랑의 왕궁을 파괴시키고, 생명의 왕궁을 파괴시키고, 혈통의 왕궁을 파괴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가 도리어 제일 나쁜 것이 되고 부끄러운 곳이 된 것입니다.

참사랑 속에 살고 싶은 인간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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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인연된 곳에는 나의 모든 신경이 충격적인 자극을 일으킵니다. 곧 사랑은 나로 하여금 제일 가까운 곳에 있게 합니다. 사랑이란 제일 가까운 동시에 나와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기쁨의 자극과 충동을 전달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보고 싶다.’라고 하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가고 싶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39

사랑은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서 한 점에 묶을 수 있는 힘으로 나타납니다. 눈은 ‘아, 보고 싶다.’라고 하고, 귀는 ‘아, 듣고 싶다.’라고 하고, 입은 ‘아, 먹고 싶다. 말하고 싶다. 배우고 싶다.’라고 할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세포가 거기에 움직여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높은 꼭대기에서 피뢰침이 번개를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경의 모든 감각을 피뢰침같이 묶기 위한 작용이 사랑의 작용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깃들게 되면 모든 감각은 한 곳으로 충동을 받아서 작용하게 됩니다. 한꺼번에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눈은 눈대로, 귀는 귀대로, 코는 코대로, 손은 손대로, 전부가 이렇게 작용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때문입니다.

40

자연이 인간의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에게 공급받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공급받아서 크는 것입니다. 복중의 물 가운데에서 살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공기 가운데에 살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사느냐? 사랑을 중심으로 해서 삽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사랑이 문제입니다. 부모의 사랑, 아내 남편의 사랑, 아들딸의 사랑인데, 사랑이 문제입니다. 생명의 요소는 공기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도 공기를 흡수해야 되고, 나와 가지고는 공기로 호흡해야 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지상으로 방향이 달라질 뿐이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제일의 생명 요소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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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태어났느냐?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는 말 한마디면 다 끝납니다. 그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란 타락한 세계의 사랑을 넘어선 사랑입니다. 모든 종교는 참사랑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종교 중의 종교인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은 세상 사랑의 한계선을 넘어설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혹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 전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못 된다는 것은 뭣이냐? 제자라는 것은 자녀라는 얘기이므로 타락선 이상을 넘어서지 않고는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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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이란 횡적인 수평관계만이 아니라 종적인 수직관계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참사랑의 횡적 관계가 종적으로 점점점 그 차원을 높이면 결국 그 정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 자리가 참사람의 왕인 하나님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모든 것이 다 결합되고 품기고 사랑화되고 꽃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주 가운데 있는 모든 존재는 사랑으로 화하기를 바라고 사랑 가운데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태어나고, 사랑을 위해서 살다가, 사랑을 위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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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만물도 원합니다. 만물의 영장 된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을 품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에게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물들은 이러한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윈의 약육강식이라는 말은 이러한 참사랑의 논리로 다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개미나 미물들마저도 참사랑을 원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주인한테 가서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높은 대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모든 만물을 먹고 취할 수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먹고 취하는 데 있어서 이들을 지으신 하나님의 참사랑을 대신하는 마음으로 먹고 취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