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인들은 영계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는 것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장례식을 승화식(昇華式)이라고 합니다. 승화! 거룩히 승천한다는 것입니다. 승화되어야 된다는 승화식입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죽은 아들을 놓고 아들딸을 낳은 것보다도 더 기뻐하고, 하나님이 왕자 왕녀를 가졌던 그 기쁨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런 자리가 안 되면 죽음의 고개를 넘을 수 없습니다. 아들이 죽은 그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해방된 만세를, 사랑에 승리했다는 만세 기도를 해야 됩니다. 흥진 군이 갈 때 선생님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 세계에 갈 길이 멀기 때문에 통일식을 해준 것입니다.
제2절 성화식
승화식과 성화식
세계적 가나안 복귀 40년 기간에 3년노정을 책정했습니다. 이 3년노정에 결판을 봐야 됩니다. 3년노정에 있어서 2년째가 위험합니다. 제일 힘들 때입니다. 그래서 그때에 흥진 군이 갔고,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지도자로서 하늘땅을 책임진 선생님은 심각했습니다. 흥진 군을 사탄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먼저 통일식을 하고 승화식을 했습니다. 승리의 아들로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흥진 군이 갈 때까지 선생님이 눈물을 안 흘렸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세계에서 선생님이 기도한 대로, 말한 대로, 사실 그대로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흥진 군이 영계에 갈 때 통일식을 하고 애승일을 선포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사탄세계의 사망을 밟아 치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는 흥진 군을 3일 동안 선생님이 보고도 눈물 흘려서는 안 됩니다. 죽은 아들딸을 놓고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사랑을 바쳐 드려야 됩니다. 그래서 애승일을 선포한 것입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승리했기 때문에 승화식입니다.
통일교회는 장례식을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출생도, 그다음엔 성혼도, 그다음에는 끝도 완전한 열매로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승화식입니다. 자기 멋대로 산 사람을 승화식 해주고 꽃 잔치를 해주는 것이 얼마나 저나라에서 부끄러움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그런 원칙을 알고 초석을 놓고 거기에 맞춰 나가야 됩니다.
흥진 군이 혼자 갔지만, 오순절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50일째 되는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문도가 성신 강림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날을 기해 땅에서 흥진 군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구덩이를 다 메워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흥진 군을 보내면서 눈물을 흘리면 안 됩니다. 어머니에게도 떠난 흥진 군 앞에 섭섭해하지 말라고 맹세하게 했습니다. 그때 길을 안 잡아 줬으면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비참하게 영계에 가기 때문에 예수님이나 영계의 갈라진 축복세계와는 무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화식입니다. 그런 것을 함으로 말미암아 승화식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흥진 군의 승화식에서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도 미국에서 승화식을 기쁨으로 끝냈다는 보고를 받고 난 뒤에 비로소 잘 가라고 하면서 축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눈물로 갈라진 역사가 눈물로 화합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승화식 때에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됩니다. 눈물을 흘리면 갈 길을 못 간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는 데는 희망이 없습니다. 사랑의 마음과 관심이 없으면 인연이 맺어질 수 없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애정을 갖지 않으면 그 죽음 너머의 세계를 주관하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경지를 초월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타락권을 넘어서지 못하면 아무리 하나님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영계에 희망이 있으면 죽는 것도 사랑을 가지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에서는 장례식을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사탄의 방파제를 대번에 돌파해서 승화해 가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아내 보기에, 남편 보기에 부끄럽지 않아야 됩니다. ‘순결한 핏줄을 지켜 후손들 앞에 남겨 주기 위해 이 전통을 지켰습니다. 천상이 바라는 하나님의 순결한 천국을 창건할 수 있는 전통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살다가 갑니다. 아버지 앞에 가니 부탁합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승화식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죽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닙니다. 차원이 낮은 세계에서 차원이 높은 세계로 사랑의 다리를 통해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는 죽음을 승화라고 합니다. 차원 높이 승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죽어서 장사하는 것을 승화식이라 합니다. 승화식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붙들고 울면 안 됩니다. 우는 것을 보고 죽은 영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지해서 내 갈 길을 밧줄로 묶어 당기면서 못 가게 만들어 놓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거룩히 비상천(飛上天)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을 가지고 밀어주어야 됩니다. 잡아당기지 말고 밀어주어야 됩니다.
승화식이란 말은 흥진 군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애승일의 그 애승(愛勝)이란 말은 사망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남들 같으면 어머니가 몸부림을 치고 배밀이하며 통곡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머니가 눈물 흘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3일 이내에 이 식을 해줘야 됩니다. 사망을 이겼노라고 선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승화식을 하는 것입니다. 사망을 넘어 기쁨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승화식을 거쳐 가는 사람들은 영계의 모든 골짜기를 휘익 넘어가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신성한 말입니다. 슬픔과 고통의 대명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참부모님께서 그 단어를 성화(聖和)로 고쳐 발표했습니다. ‘거룩할 성(聖)’ 자입니다. 올라가는 ‘승(昇)’ 자가 아닙니다. 이 성화라는 말도 선생님이 쓰는 단어입니다. 승화와 성화를 분별 못하던 것을 성화로 고쳐 발표했습니다. 지상의 삶을 꽃피우고 열매맺어 알곡을 품고 환희와 승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때가 영계 입문의 순간입니다. 한 번밖에 없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해야 할 순간입니다. 마음껏 축하하고 전송해 주어야 할 때입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할 때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살아가야 할 인생행로에 죽음 후 3일간은 1초도 안 되는데, 그것을 왜 서러워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서러워하다가는 영원한 생명이 죽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할 때입니다. 이 성화라는 것은 3일 동안 죽은 사체를 놓고 영계 가는 길에 정성 들이는 것입니다. 이 승화식이라는 말을 성화예식이라는 말로 고쳤습니다.
원전식
통일교인들은 영계를 넘어섭니다. 선생님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습니다. 타락이 뭐냐 하면 사망을 가져왔으니 종교가 부활권을 만들어야 됩니다. 애승일을 통해 승화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전입니다. 사망이 아닙니다. 천국에 직행입니다. 지상 나라에서부터 천국 나라의 궁전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전입니다. 세상에 그런 종교는 통일교회밖에 없습니다.
통일교회 식구들이 가는 곳은 원전입니다. 원전이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근본을 찾아간다는 말입니다. 원전이 어디입니까? 사람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입니다. 크든 작든 정자와 난자가 만난 그 순간서부터 숨을 쉬고 같이 붙들고 좋아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둘이 붙들고 밀어주면서 존속합니다. 그 원전 이상을 지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전에서 ‘전’은 ‘집 전(殿)’ 자입니다. 궁전의 ‘전’ 자입니다. 어머니의 난자가 아버지의 정자를 만나서 지상에 태어나기 전의, 이상의 하나님 속에 있던 근본을 찾아 들어가게 됩니다.
칠성판이 무엇인지 압니까? 사람이 죽어서 널에 들어가기 전에 깨끗이 씻기고 해서 준비합니다. 널에 옮겨 놓기 전에 판 위에 놓고 다 씻어야 됩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 안 되어서는 널에 못 들어갑니다. 누가 그 일을 해주느냐?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수의도 정성 들여서 미리 마련해서 입혀 보내야 됩니다. 죽어서 널에 들어가게 될 때 입는 옷을 수의라고 합니다. 충신과 효자의 대표 사람들이 바느질을 시작해서 그것을 받아서 만든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영계에 가려면 애국자 충신의 전통이 아니면 안 됩니다. 한국의 장례식에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장사 지내는 곳을 공동묘지라고 하지 않고 원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늘땅이 해방되기 위해서 그 자리에 들어가서 묻히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근본적인 궁전을 말하는 것이 원전입니다. 그곳에는 아무나 묻히지 못합니다. 순교당하든가 하는 사람들이 묻히는 것입니다.